먼저, 왜 제3성전이 종말의 표지가 될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이후 구속의 역사나 종말적 예언에서 이스라엘이 특별한 의미가 없는지 성경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세대주의 종말론을 믿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예루살렘에 제3성전이 완성될 것이라고 마음을 설레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 기대는 지나가 버린 과거사가 되었습니다. 성경의 예언과는 맞지 않는 빗나간 예측이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혹시 누군가에 의해서 제3성전이 완성된다 해도 그것이 종말의 이정표는 아니라는 사실을 성경을 근거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지상에 계실 때에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대하여 하신 말씀들을 종합해 보면, 3성전 회복과 유대인들의 구원이 종말의 이정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구속사 예언에서 민족적, 영적인 특권을 이미 상실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 대표적인 말씀이 이스라엘의 미래 운명을 미리 말씀하신 두 가지 비유 즉, ‘악한 농부의 비유모퉁이돌 비유입니다. 

이 충격적인 두 가지 비유는 첫째,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짧은 요약이며, 둘째, 그 영적 상속자인 교회에 대한 예언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들을 통해서 십자가 희생으로 이 땅에 세워진 교회 시대 이후에는 이스라엘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언하셨습니다. 

먼저, 이 두 비유를 말씀하신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당신의 죽음을 앞두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다음, 그 장엄하고 아름다운 성 예루살렘 성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시며 우셨습니다.( 19:38~44), 그리고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셨습니다.( 19:45~46). 이때에 분노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함께 나아와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20:2)라고 따지자 그것에 대하여 예수께서 직접적으로 하신 대답이 바로 포도원의 비유이고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러니까 현대의 유튜버들이나 개인들이 자의적으로, 혹은 성경에 부합하지 않는 어떤 잘못된 사상에 심취하여 이스라엘의 회복과 제3성전 건축이 종말의 이정표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막연한 공감을 가지고 있다면,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이 비유를 통해서 올바른 판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20:9). 이렇게 시작되는 이 비유를 한 구절씩 살펴보겠습니다. 

● “백성에게 말씀하시되” – 예수께서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비유의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그 민족적, 영적 특권을 유지하기를 기대하셨고, 또 그들에게 놀라운 은혜, 더 나아가 최종적인 은혜를 제공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 “한 사람이” – 여기에서 한 사람은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 “포도원을 만들어” – 포도원을 만든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그 포도원은하나님 나라로서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합니다. 이사야서 5:7절에는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포도원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상징하였으며, 포도나무가 없어지는 것은 이스라엘이 저주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 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 8:13). 

●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세로 주었다라는 말씀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언약관계를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포도원으로 상징된하나님 나라가 그들에게 위임되었고, 그들은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 그 언약에 부응하는 나라가 되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 “오래 있다가” –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한 나라가 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으며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맺은 언약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거듭된 불순종과 반역에도 불구하고 거의 1600년의 세월 동안 그 언약을 붙들어 주셨고 그들을 지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통해 예수께서는, 육신적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충성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20:10~12).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의 종들은 소출을 받으러 갔다가 매를 맞고, 능욕을 당하고, 게다가 상해를 입고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간결한 요약입니다. 이 말씀에서, 주인이 보낸 종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돌이키기 위해서 보내신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완고하게 그들을 거절하였고 그들 중 어떤 이는 죽음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도원 주인은 오히려 놀라운 결정을 합니다. 아들을 보내 그들과 화목하려고 하였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13).  

주인이 보낸 아들을 보고 그 악한 농부들이 양심의 찔림을 받아서 그들의 행위를돌이키고’ ‘언약한 세를 내기로 하면, 그들에게포도원을 계속 맡기려고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끝까지 붙들어 주시고 새 언약의 시대를 함께 시작하시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셨고, 결정적으로 아들까지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의 그 관대한 호의를 무참히 묵살하였을 뿐 아니라, 비극적인 일을 저질렀습니다.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14,15). 

악한 농부들은 아들로 표상된 예수 그리스도를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어 죽였습니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 밖 골고다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주인이 베푼 이 놀라운 은혜를 거절하여 그의 아들까지 죽인 이 슬픈 이야기의 결말이 무엇입니까?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15,16)

●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 예수께서는선지자들을 죽이고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예루살렘에 대하여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며( 23:37),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멸망의 날이 다가오면도망할지어다”,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24:15~19).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이 예루살렘 멸망과 함께 완전히 끝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 예수님은 그 비유를 말씀하신 다음, 유대인들에게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뇨?”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친히 그 대답을 주셨습니다.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에게 맡겨진포도원”(하나님의 나라)다른 사람들에게넘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민족적, 영적인 특권이 끝나고다른 사람들에게 그 특권이 넘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무나도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유대인들은 결정적으로 두 가지 착각을 하였습니다. 첫째는하나님 나라를 지상 왕국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둘째는하나님 나라를 자신들의 힘으로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그 당시나 지금 21세기에도, 그들이 세우려 하였던 하나님 나라는 예수께서 말씀하신천국’, ‘하나님 나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라입니다. 예수께서 아들의권세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유대인에게] 이르노니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모든 백성]이 받으리라”( 21:43). 

예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 육적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되지 않을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8:11, 12).

3성전이 회복되든 그렇지 않든,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트럼프가 그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유튜브에 그런 주장을 하는 영상이 아무리 많더라도, 종말의 시대에 이스라엘이 회복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종말의 징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세대주의 종말론에 오염된 비성경적인 견해에 불과한 이론입니다. 예수께서는 종말의 시대에 그의 백성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미혹되지 않기를당부하셨습니다. 물론 구원의 계획에서 유대인들이 배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졌던 민족적, 영적 특권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이며, 종말적 예언에 있어서도 유대인들이 별도의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포도원 농부의 비유로 돌아가 봅시다. 예수께서 포도밭 주인이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의미를 알아차린 유대인들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였습니까?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20:16). 이 말은어디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공동번역)라는 강한 부정의 의미입니다. 이 구절을 희구법의 의미를 살려서 번역하면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도록 하겠는가?’라는 뜻입니다. 그런 일은하나님이 금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성전은 하나님의 전이고, 우리는 그분의 백성인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리가 있겠는가?”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서 주시는 경고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던 사람들이거짓 확신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2) 깨어져 흩어지리라

유대인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포도원 비유의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을 때, 예수께서는모퉁이 돌의 비유’( 20:17,18)를 통해서동일한 결론’, 즉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에서 끊어질 것을 재차 강조하셨습니다.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20:17, 18). 

악한 포도원 농부들이 죽인아들은 헬라어로휘오스인데 히브리어로을 번역한 것입니다. 그리고 건축자들이 버린은 헬라어로리도스인데 히브리어에벤을 번역한 것입니다. ‘에벤에는 동일한 발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포도원 비유의 주인공은아들’()이고 모퉁이 돌 비유에서 주인공은’(에벤)입니다. 그리고아들이나모퉁이 돌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두 비유에서 죽임을 당한아들이나 건축자들이 버린은 모두 유대인들이 배척하고 죽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두 개의 비유를 통해서너희들이 죽인(죽일) 그 아들()이 하나님 나라의 모퉁이 돌(에벤)이다. 나는 아들의 권세로 말하는 것이고, 아들의 권세로 이 성전을 정결케 하였다.”라는 의미로 이 두 가지 비유를 연속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리가 있겠느냐라고 반문하고,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기 시작한 그들은 불행하게도 끝까지, 예수를 거절하게 됩니다. 예수님 승천 이후 오신 성령의 역사도 거절하였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에 의해서거절된 돌은 하나님 나라의모퉁이 돌이 될 것이며, 예수를 거부하고 성령을 거절한 그들은 민족적, 언약적 특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 이사야서 8:14, 15절에도혹은반석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예수)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대우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미래 운명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알면서도 예수를 그들의 구주로 인정하지 않은 결과 걸려 넘어져 망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 이 말씀은 다니엘 2장에 나오는돌나라를 연상하게 합니다.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에 나타날돌나라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이스라엘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물론 유대인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구원받을 사람들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역사의 종말의 순간에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이 집단적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두 비유를 통하여육신적 이스라엘이 언약에서 끊어질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도 예수께서는아브라함의 언약가운데 있다고 자처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8:39). 이스라엘은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그 언약에 합당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육신적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참된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새 부대’( 9:22; 5:38)가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선언하였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3:29).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려면그리스도께 속한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거절함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스스로 부인하고 원가지에서 잘려 나가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회복될 것이며, AD 70년에 무너진 헤롯 성전이 회복될 것이라는 어떠한 암시도 하지 않으셨고, 또 신약의 사도들 중에 어느 누구도 예루살렘 성전이 회복될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적 이스라엘은 더 이상 예언적으로 아무런 특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며, 그들이 종말 예언에서 특별한 지위도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영적인 의미일 뿐이지 실제적인 이스라엘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3) 유대인의 회복에 관한 예언이 있습니까?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28:20). 예수님의 이 명령에시간’()에 관한 중요한 두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는세상 끝날까지이고, 다른 하나는항상입니다. “세상 끝날은 종말의 때를 포함합니다. 세상 끝날에세상에서 너희(교회)가 잠시 일하다가, 세상 끝날에 가면 유대인이 다시 회복되어 복음이 완성될 것이다.라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서항상이라는 말의 헬라어파스,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세상 끝날까지”, 제자들에 의해서 계속 복음이 전파되다가세상 끝이 온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교회가 계속복음 전도의 사명을 이루어갈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가 되면교회 시대가 끝나고영적 새 이스라엘이 세워진다거나(신천지 주장), 유대인이 다시 회복되어 하나님 나라를 완성한다는(세대주의 주장) 개념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만든 추측에 불과한 것이며, 예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세상 끝날까지, 우리 주님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실 때까지, 교회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 외에 다른 나라는 없으며, 다른 복음도 없으며, 다른 구원자도 없습니다.

 

요약->예수께서 두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 의미

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오래 참으셨고,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셨고, 그리고 이제 아들을 보내어 아들을 영접함으로 그들의 민족적, 언약적 특권을 유지하기를 바라셨다.

② 그러나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음으로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20:16)라는 말씀이 성취되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언약적 특권을 상실했다.

③ 예수께서는 교회 시대 이후에 이스라엘이 회복되거나 그들이 종말 예언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말씀은 전혀 하시지 않았다. 그러므로 제3성전의 건축과 제사의 회복은 그것의 성취 여부와 상관없이 성경과 무관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