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히 말하자면, 첫 언약과 새 언약 관계에는 이중적 특성이 있다. 동일성과 차이점이다. 성경의 언약을 비교해 보면 언약을 구성하는 기본 요건과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아 연속성을 나타내지만, 다음과 같이 차이점은 분명히 있다. 

지상 성소와 하늘 성소라는 차이점이다. 옛 언약 아래서 지상 성소와 제사장 직분과 봉사가 있었듯이 새 언약 아래서도 하늘 성소와 제사장 직분과 제사장의 봉사가 있다. 

첫 언약 아래서 그리스도의 죽음이 표상과 그림자와 비유로 계시되었으나( 8:5; 9:9) 새 언약에서는 그분께서 실체이셨다(shadow versus reality). 첫 언약 아래서는 흠 없는 동물이 대속물었으나 새 언약에서는 죄 없으신 그리스도의 몸이 대속물이었다. 첫 언약에서는 지상 성소에서 연약한 인간이 제사장이었으나 새 언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이시다.

첫 언약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짐승의 피로 비준했으나( 24:6-8 9:18-21) 새 언약은 실체이신 그리스도의 피로 비준했다( 22:20). 첫 언약은 사람의양심을 온전케 할 수 없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9:10) 맺은 언약이다. 새 언약은 흠 없는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를 이루어 양심을 정결케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언약이다( 9:11-14).

첫 언약에서 십계명은 돌비에 새겨져 인간의 양심에 내면화되지 못하고 외형적인 법전으로 법궤 안에 안치했지만, 새 언약은 하나님의 법을 심령에 기록하여( 31:33; 8:10) 인간의 마음에 내면화됨으로 성령의 활동에 힘입어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며 순종한다. 

첫 언약은 흠이 있었지만 새 언약은더 좋은 약속 위에 세워진 더 좋은 언약”( 8:6 7:22)이다. 바울은만약 저 첫째 것이 흠이 없었다면, 둘째 것을 요구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8:7) 라고 하였다. 첫 언약의 성소 제도와 섬기는 예법( 9:1)은 전부 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성취하실 모든 것을 상징하는 게 흠이었다. 새 언약에서 그분께서 실체가 되셔서 여러 세대 동안 예표하여 오셨던 것을 직접 성취하시고 완성하셨다. 첫 언약에서 황소와 염소의 피를 반복하여 계속 드린다 해도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하는( 10:4) 흠이었지만, 새 언약 아래서 그리스도의 피는 단번에 드렸어도 그 피가 죄를 완전히 사하셨다( 9:22). 새 언약에서 그리스도께서 첫 언약의 것을 성취하심으로 첫 언약 아래 드리던 상징적인 모든 것을 효험 없게 하여 낡아지고 쇠하여 없어지게 하셨다( 8:13). 그래서 새 언약이 더 좋은 언약( 8:6)이다. 

시내산에서 맺은 첫 언약의 중보자는 모세였고( 20:18-21), 새 언약의 중보자는 그리스도이다( 8:6; 9:15; 12:24). 모세의 중재는 단지 그리스도의 중재를 예표할 뿐이었지 그 자체가 백성들의 허물을 담당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죽으시고 허물을 담당하는 중보자가 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를 목격하고 죽을까 두려워 떨며 모세에게 중보자가 되어 달라고 간청하였다( 20:18, 19). 모세가 그 요구에 응하여 시내산을 일곱 번이나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중재자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옛 언약은 첫 언약이라 하고 새 언약은 둘째 언약이라 칭한다( 8:7, 8). 그 이유는 시내산에서 이루어진 첫 언약은 십자가 전에 먼저 비준되었기에 첫 언약이라 하고 새 언약은 나중에 십자가의 희생으로 비준되었기 때문에 둘째 언약이라 한다. 비록 새 언약이 창세 전에 수립되고 아담과 아브라함에게 되풀이 되었으나 그리스도의 죽으심까지는 비준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담부터 줄곧 하나님의 약속은 계속 존재했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다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비준하시자 그 언약은 확실하게 새 언약으로 불렸다. 

첫 언약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과 마음에 참된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으나 새 언약은 내재하시는 그리스도의 도움과 성령의 활동으로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 새 언약 아래 회개하는 죄인들이 성령의 역할로 중생의 체험을 하게 되고 심령이 새롭게 됨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된다. 따라서 첫 언약과 새 언약의 결정적 차이는 성령의 역할이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법을 내면화하고 중재하여 순종에 필요한 능력을 주신다.

첫 언약 아래서 비록 상징과 표상을 통해 예표로 제공된 죄의 용서가 있었지만, 율법에 죄인을 위한 속죄가 명시되지 않았다. 새 언약 아래서는 회개하면 그리스도의 피로 값없이 속죄가 실제로 제공된다. 그리고 용서해주신 후에 그 죄를 다시는 기억지 아니하신다( 31:33, 34 8:12). 새 언약은더 좋은 약속, 죄의 용서의 약속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 숭배로 첫 언약을 어겼을 때 모세가 하나님께 용서를 간구했으나 하나님이 실제로 용서하셨다는 언급은 없다( 32:30-35). 오히려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32:33).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34).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35) 라고 하였다. 

새 언약은 사라와 이삭으로 표상되고 옛 언약은 하갈과 이스마엘로 표상된다( 4:24-29). 전자는 성령을 따라 난 자고 후자는 육체를 따라 난 자이다. 전자는 새 예루살렘이 표상하고 후자는 시내산과 예루살렘이 표상한다.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그분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과 아주 밀접한 관계 속에 살아가기 원하셨다. 그것이 그분이 인간을 향한 사랑이었다. 지금도 하나님은 새 언약의 백성들인 우리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영원한 언약의 변함없는 가치를 깨닫고 그분의 사랑에 반응하여 더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주는 기쁨 속에서 구원의 축복을 맛보며 그분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 활발한 교제 속에 살아가는 것은 새 언약 백성의 행복에 필수적인 삶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모두 믿음으로 언약 관계에 들어가서 마지막 시대의 남은 백성답게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 거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그분의 뜻을 종종 무시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므로 번번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깨뜨렸지만, 하나님께서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그 관계를 회복하실 계획을 세우셨고 그분이 친히 주도하여 언약을 성취하므로 사랑의 관계를 회복해 주셨다. 언약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그분에게 있었다. 친절하고 자상하신 하나님은 먼저 찾아오셔서 우리가 가진 여러 결함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성취하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셨다. 역시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정답이시다. 우리가 순종과 사랑으로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분과의 언약에서 삶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 되는 것이 우리와 그분과의 밀접한 관계를 맺는 언약의 목표요 절정이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은혜와 축복을 누릴 특권을 가지고 있다. 

성경을 다시 한번 살펴보아도 언제나 언약을 주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셨고 넘치는 은혜로 그 언약을 성취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셨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이 사실은 오늘도 변함이 없다. 언약의 본질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기억하여 우리도 남은 백성답게 참된 순종으로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언약의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요일 4:18)는 것이다. 우리가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남은 백성으로서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새 언약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법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고 그분과의 언약에 의한 밀접한 사랑의 관계 속에서 힘차게 살아가는 삶의 진면목이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새 언약 백성으로서 참된 순종의 삶을 통해 구원의 샘이 되며 오늘도 그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새 언약의 일꾼이 되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의 밀접한 언약 관계를 유지하며 세상을 위한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간원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