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루살렘 성에 관한 이상’은 갑자기 보인 구별된 이상이 아니라, ‘이 땅에서 벌어지는 어떤 일’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하늘에서 내려오는 어린양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 성에 관한 이상(19~22장)은 이 땅에 있는 큰 성 바벨론의 미혹과 멸망(17~18장)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성과 새 예루살렘 성, 이 두 성에 관한 이상 부분이 합쳐져 계시록 전체의 절정을 이룹니다. 따라서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이상이 계시록의 결론이며, 모든 성경 예언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름답고 신비한 광채로 빛나는 도성으로 들어가기 전에, 천사는 요한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너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복이 있다고 기록하라”…“이것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들이다.” (계 19:9. 원문 성경)
그러면 누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고, 그 초청은 언제 끝나게 될까요?
1. 그 성에 들어갈 사람: 정통正統과 정행正行
예수는 자신을 ‘혼인집 신랑’으로 말씀하셨습니다(마 9:15; 막 2:19; 눅 5:34). 그리고 ‘아들을 위하여 혼인식가모스을 베푼 임금의 비유’(마 22:1~24)를 말씀하셨는데, 여기에서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 비유에서, 사람들이 혼인식에 참여하기를 거절했다고 ‘아들의 혼인식’이 연기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종말에 있을 ‘하늘 예루살렘 성의 혼인식’(계 19:7; cf. 19:9)도 아버지가 작정한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혼인집에 손님이 가득했다’라는 말씀처럼, 구원을 받고 싶은 사람은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는 임금이 그들이 ‘예복’을 입었나 살펴보고, 합당하지 않은 사람을 쫓아내는 것으로 마쳐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 22:14).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셨는지를 아시면 안일한 생각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고, 외양상 당대에 그 누구보다 하나님을 가장 잘 믿고 있는 택하신 백성, 유대인들에게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눅 6:46)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따르면,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관해서, 두 가지 선명한 핵심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첫째,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아는 사람입니다.
‘정통’正統, ortho-dox 교회라는 말에서 ‘정통’이라는 말 자체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랜 역사’를 가졌다고 정통이 되는 것이 아니며, 신자 수가 많다고, 혹은 그 교회가 유명한 교회라고 정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정통’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기도할 때마다 큰 소리로 “주여 주여”하던 유대인들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마 7:13, 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정통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정통’ortho-dox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정통’이라는 말 ‘오소–독스’에서 ‘오소’는 ‘올바른’이라는 의미이고, ‘독스’는 ‘교리’라는 의미입니다. 정통 교인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아는 사람’이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그대로 믿는 교회’가 ‘정통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깨달은 사람들이 “택함을 입은 자”,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행하는’ 사람입니다정행 正行, ortho-praxis. 예수께서는 “나의 말하는 것을 행”하는 그 사람이(눅 6:46),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마 7: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시록은 ‘행함’과 ‘결단’이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결단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바벨론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계 18:4).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준비가 된 사람인지, 아니면 사람의 교훈이나 일개 교단에 매여 있는 사람인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이 정통 교리를 가지고 정행을 하고 있는지를 시험하기 각 사람에게 시험과 핍박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정통’과 ‘정행’에 길들여있지 않은 사람들은 마침내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확인해 봅시다. 어떤 사람이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까?
첫째,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아는 사람입니다정통.
둘째,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행하는’ 사람입니다정행.
2. 그 성에 들어갈 사람: “내 백성아 바벨론에서 나오라”
“내 백성아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외침은 “교회나 사람에게 매여 있지 말라”라는 말씀입니다. 산상수훈을 정리하는 마지막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분명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고, 또 주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마 7:22, 23. 원문 성경)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행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불법”하나님의 계명이 아닌 것을 행하는 사람이라면, 즉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천국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예수님의 엄숙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나는 바울에게 속하였다”, “나는 아볼로에게 속하였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하는 자라고, “육의 사람”이라고 단정합니다(고전 3:3, 4). 이것은 심각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하지만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고, ‘육신에 속한 사람’이라고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의 이름을 위해,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고”,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13~27)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가 사도 된 것도 누구에게서 배워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었으며(갈 1:12; 고후 12:7),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가서”(고후 12:2) 하늘에 사람이 세우지 않은 “참 장막”이 그곳에 있다는 것과 그곳에 “섬기는 이”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것을 본 사람이었습니다(히 8:2).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행한 사람들 가운데, 바울과 비교할만한 혁혁한 능력과 성과를 이룬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절대로 “나는 바울에게 속하였다”, “나는 아볼로에게 속하였다”라고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침례를 받았느냐”(고전 1:13)라고 말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타락’은 ‘예수’가 계셔야 할 자리를 ‘육신일 뿐인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슬픈 일이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인 오늘날에도 역시 같은 일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 문밖에 계십니다(계 3:20).
주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 바울이 교회가 육체가 되지 않도록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 바울, 아볼로가 무엇이냐? – 그들은 육신일 뿐
2. 밭과 농부의 비유 – 일꾼, 맡은 자 아무것도 아님
3. 집과 건축자의 비유 – 공적을 시험 받을 사람일 뿐
4. 바울, 아볼로, 게바? – 그들은 주께 심판 받을 자
‘밭과 농부의 비유(고전 3:5~9)에 이어지는 ‘집과 건축자의 비유’(고전 3:10~17)의 ‘중심’에 있는 말씀이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고전 4:4)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자신이나 아볼로가 “그리스도의 일꾼servants”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stewards”일 뿐이며(고전 4:1), 심판을 받을 종과 집사를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바울이 점증 강조를 통해 거듭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사중으로 자신을 부인합니다. ① 바울이나 아볼로나 모두 “육신”이며, ②“ 일꾼”이며 “맡은 자”일 뿐 아무것도 아니며, ③ 그들의 대단해 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공적이 불타 없어질 때 해를 입고 겨우 불에서 건져낸 것처럼 구원받을 수도 있는 사람일 뿐이며, ④ 또한 그들이 누구든지 각 사람의 마음의 동기를 드러내시는 주 앞에서 심판을 받을 자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엄숙한 권면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에게 매여 있지 말라”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의 경고를 계시록의 음성으로 요약하면 어떻게 될까요? “내 백성아 바벨론에서 나오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경고를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인 오늘날에 적용해봅시다. 어떤 사람은 ‘나는 칼뱅에게 속하였다’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나는 웨슬리에게 속하였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칼뱅이 무엇이며, 웨슬리는 무엇이냐, 그들 모두 심판의 때 드러난 공적에 따라 심판받을 인생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는 장로교, 감리교, 가톨릭 교인이다’라고 말합니까? 그러면 바울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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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에게 속해 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아볼로에게 속해 있다”하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일반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고전 3:4 원문 성경)
예수는 “세상 사람들”처럼 ‘사람’과 ‘교단의 전통’에 매여 있는 사람들을 “맹인”이라고 간주하셨습니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눅 6:39)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요 9:41)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는 사람에게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3.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는 사람의 신원
요한계시록은 그 자체로 완결된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 언급된 계시나 내용은 일차적으로 요한계시록 안에서 먼저 찾아보아야 합니다.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완료형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계 19:9)
천사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는 일이 마쳐졌다’고 말합니다완료형.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저주를 받으시고, 연약한 자들을 새롭게 하셔서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삼으신 ‘신랑’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고 축하하는 사람들의 ‘명단 작성’이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썩을 것”(고전 15:53) 대신 “신령한 몸”(고전 15:44)을 받게 될 그 때에 청함을 받은 자들에게는 영원히 멈추지 않은, 생명으로 충만한 심장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 복락에 참여할 자가 누구입니까?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두 가지 방식으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청함을 받은 사람: ‘종말심판 평행구’에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계 19:9)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계시록 19:9~10과 사실상 ‘동어반복적인 구절’이 있습니다. 그 구절이 청함을 받은 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거울’처럼 비춰줍니다. 그 구절은 바로 계시록 20:6~9 말씀입니다. 계시록 19:9~10과 계시록 20:6~9 말씀을 비교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계시록 19:9~10 계시록 20:6~9
일곱 천사 중 한 천사가 요한에게 ‘음녀가 받을 심판’을 보여주고 말한다(19:9~10; 17:1)
일곱 천사 중 한 천사가 요한에게 ‘어린양의 신부’를 보여주고 말한다 (22:6~9; 21:9)
“이것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다”라고 말한다 (19:9)
“이 말씀은 신실하고 참되다”라고 말한다 (22:6)
요한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였다 (19:10a)
요한은 그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다 (22:8b)
천사가 “나는 ① 너와 ②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의 종이니 그리하지 말라”고 말한다(19:10a)
천사가 “나는 ① 너와 ② 네 형제들인 선지자들과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의 종이니 그리하지 말라”고 한다(22:9a)
“하나님께 경배하라”라고 말한다 (19:10a)
“하나님께 경배하라”라고 말한다 (22:9b)
천천만만의 천사 중에 일곱 대접 재앙을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아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계 14:12)을 핍박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였던 음녀 바벨론과 그에게 ‘속한’ 땅의 사람들을 심판한 천사가 요한이 경배하려고엎드리려고 하자 자신을 무엇이라 말합니까?
“나는 … 종이니 그리하지 말라” (계 19:10a; 22:9a)
주인이 맡겨주신 작은 일을 하면서 영광과 칭찬을 스스로 취했던 예수님 당시의 종교인들이나,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 ‘나는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고 양을 양의 문인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대신 자신의 교회나 교단의 울타리에 가두어둔 교회 지도자들과 얼마나 다른 모습입니까? 천사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경배하라” (계 19:10a; 22:9b)
세상 모든 사람이 ‘큰 성 바벨론’에 속하든지, 아니면, 어린양의 하늘 신부 ‘새 예루살렘 성’에 속하든지 둘 중 하나에 속할 텐데, 진실로 그가 “하나님께 경배”하는지 여부에 따라, 그 사람이 ‘큰 성 바벨론 사람’인지 ‘새 예루살렘 성 사람’인지가 결정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참된 경배’를 회복하지 않은 사람은, 교단이나 직분에 상관없이, 그들이 하나님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무신론자인지 상관없이, 천사가 보여준 대로, ‘음녀가 받을 심판’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는 이런 사람들입니다.
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계 13:15)하는 위협과 핍박 속에서도, 하늘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계 11:19) 돌판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명”(계 12:17; 14:12)에 따라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계 14:7)하는 자들.
② 특별히, 십계명 제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이는(왜냐하면)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 11)라는 명령에 따라 “하나님께 경배”하는 자들.입니다(계 19:10a; 22:9b).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서 밝히 알게 되는 것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는 사람이나 교단에 매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린양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계 14:4).
바울이 “가말리엘”을 존경했지만, 가말리엘에게 속하지 않고(행 22:3) “예수 그리스도의 종”(롬 1:1; 빌 1:1; 딛 1:1)이 되었던 것처럼, 독자 여러분도 ‘참된 예배’, ‘참된 경배’를 회복하여 어린양에게 속한 사람이 되기를 당부드립니다. ‘누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는가?’에 대한 첫째 답변을 요약해봅니다.
(2) 청함을 받은 사람: ‘계시록 말씀 자체’에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계 19:9)이 어떤 사람들인지 계시록 자체가 말씀하는 바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 해석의 기본적인 방법은 전후 맥락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를 알리는 천사의 음성이 기록된 계시록 19:9 말씀 바로 앞 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 19:8)
요한계시록은 ‘일곱 교회’로 시작해서 ‘하늘 새 예루살렘’으로 완성됩니다. 그런데 계시록의 종말 부분에서는 ‘교회’ 대신에 ‘성도’가 등장합니다(계 19:8; 5:8; 8:3, 4; 11:18; 13:7, 10; 14:12; 16:6; 17:6; 18:20; 19:8; 20:9 등). 이 말씀들이 보여주는 ‘성도’의 모습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순교자’입니다. 그들은 사로잡히고 죽임을 당하고(13:10; 18:24), 피를 흘렸습니다(16:6; 17:6). 그들은 왜 피를 흘리고 죽임을 당하였습니까?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14:12; cf. 13:10)
그들이 피를 흘리고 죽임을 당한 이유는 그들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에게 속했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에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계명”은 철저하게 ‘십계명’입니다(cf. 계 11:19). 예수 믿음을 따라 십계명을 지키는 것(요 12:50)이 용의 분노를 일으키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마 10:22; 24:9; 눅 21:17).
십계명을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를 공경한다고 사람들이 성도를 미워하고 옥에 가두고 죽일까요? 제5계명 아닙니다. 살인하지 않는다고 미움을 받을까요? 제6계명 아닙니다. 간음하지 않는다고 미움을 받을까요? 제7계명 아닙니다. 도둑질하지 않는다고 미움을 받을까요? 제8계명 아닙니다.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미움을 받을까요? 제9계명 아닙니다. 그러면, 욕심내지 않고 감사하며 소박하게 산다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까요? 제10계명 그럴 리 없습니다.
그러면 왜 성도들은 인내해야 하고, 미움을 받고 죽임을 당하였습니까? 그것은 십계명에 기록된 ‘경배에 관한 계명’1~4계명 때문입니다. 바벨론 왕이 자신이 세운 금 신상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절하지 않는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분이 가득하여”(단 3:19) 그들을 풀부 불에 던지라고 “분노”한 것처럼, 마지막 시대에도 용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성도들에 대해 “분노”합니다(계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여자의 [후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계 12:17)
[여기에서 “여자의 후손”은 그리스도이다. “여자의 후손의 남은 자손”이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남은 자손”이라는 의미.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남은 자손”이라는 뜻.]
계시록 13장이나 다니엘 3장처럼, 용(사탄)은 “짐승의 우상”을 세워서 누구든지 다 절하게 하고, 절하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자는 “다” 죽이라고 악의 세력인 ‘국가’를 충동할 것입니다. 그러나 계시록 14장의 ‘하나님의 인’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킵니다(계 14:12).
천사는 어린양의 하늘 신부가 입은 ‘예복’이 “성도들의 의로운 행실”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니 “기록하라”고 하였습니다(계 19:8). 그러면 계시록 자체가 말하는 “성도들의 의로운 행실”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계 12:17; 14:12). 다시 말씀드리면, “성도들의 의로운 행실”은 ‘하나님과 관련된 어떤 선명한 행위’가 성도들에게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사람의 명령이 아니라, 국가의 명령이 아니라, 백악관의 명령이 아니라, 어떤 교단의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명령을 지키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의미입니다.
누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칭찬을 받는다고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때문에 죽을지언정, 짐승과 그의 우상에 경배하지 않으며(15:2), 인내하며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것이며(14:12), 어린양과 함께 마지막 영적 전쟁에 참여하고 영원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수고한 것입니다(14:1~13). 사실 계시록을 꼼꼼하게 읽으신다면, ‘이 결론’을 드러내는 더 많은 증거를 발견할 것입니다.
‘누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는가?’에 관해 예수께서 보여주신 계시가, 두 가지 방식으로 살펴본 바대로, 모두 “하나님께 경배하라”(계 19:10a; 22:9b)라는 하나의 결론에 이른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과 어린양께 ‘경배’하는 것입니까? 그 경배는 사람(로마의 콘스탄티누스)이 만든 법(321년 일요일 휴업법)에 기초하여 교회가 변경(364년 라오디게아 총회)한 ‘일요일 예배’가 아닙니다. 또는 아무 날이나 예배드려도 된다는 칼뱅과 같은 “사람의 교훈”에 따라 드리는 예배도 아닙니다. 그 참다운 경배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제4계명을 따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는 예배이며, 그것이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으로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계시록의 일곱 교회 안에도 ‘사람의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니골라 당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4. 니골라 당의 교훈, 발람과 이세벨의 교훈
마귀는 신자들이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지 못하도록 교회 안에 가라지를 뿌려 미혹하게 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계시록에서 예수께서 직접 언급하신 “니골라당의 행위”, “니골라당의 교훈”이었습니다.
[에베소 교회]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계 2:6)
[서머나 교회] 발람, 니골라 당의 교훈 (계 2:14, 15)
[두아디라 교회] 이세벨을 용납함 (계 2:2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사망의 교훈에서 벗어나라고 요청하시면서 회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니골라 당의 교훈’은 그리스도의 분노를 일으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계 2:16)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계 2:22, 23)
예수께서 “미워하노라”라고 말씀하신 교회 안으로 들어온 ‘멸망의 교훈’, “니골라 당의 행위”는 무엇입니까?
니골라 당의 교훈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지금은 복음 시대이므로 율법은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둘째, 육은 더럽고 영(靈)만 선하다는 이원론 신앙을 주장했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보호되기 때문에 어떤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주장했습니다. (신성종 박사, 요한계시록 강해, 31~32.).
놀랍지 않습니까? 오늘날 여러 교단에서 가르치는 많은 종교 지도자들의 교훈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오늘날 교회가 이 “니골라 당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으면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예고하신 대로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왜, 선지자 노릇하고 능력을 행한 것처럼 보이는 교회 지도자들이 심판을 받게 됩니까?
①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면서, ‘율법’과 ‘계명’은 버렸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는 율법 시대이고, 신약 시대는 은혜 시대’라고 가르칩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께서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신 또 다른 ‘니골라’입니다.
② 그리고 죄와 상관없이 사셨던 예수 신앙이 헬라 이원론에 물들어서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마음’인 것처럼 가르치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마음”은 하나님의 율법에 전적으로 순종하지 않고 얄팍하게 입술로만 하나님을 인정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지, 정, 의,’ 즉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하나님과 그분의 계명명령, 율법에 굴복하고 드려진 상태입니다(신 6:5; 마 22:37 등). 하나님의 율법이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 ‘새 언약’임에도(렘 31:33; 히 8:10 등) 불구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저버린 오늘날 교회는, 입술로만 공언하는 믿음이 새 언약인 것처럼, 오직 그 ‘마음’만이 새 언약에서 중요한 것처럼 가르치고 있습니다.
③ 오늘날 많은 교회가 예수 믿음과 사도들이 가르쳤던 믿음, 그리고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이 가르쳤던 믿음과는 전혀 다른 믿음을 가르치고 있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면서 ‘용서’만 강조하고, ‘율법에 대한 순종’과 ‘죄로부터 승리’는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죄를 지어도, 예수께서 다 용서해주시니, 기뻐하고 감사하자.”라는 식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은혜가 왕 노릇 하기 때문에 죄불법, 불순종, 불의, 불선를 이긴다고 말고 말했습니다(롬 5:21).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록에서 일곱 재앙이 시작되기 전에 하늘 장막을 열어서 ‘심판의 기준’이 되는 십계명이 담긴 ‘언약’궤를 보여주셨습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계 11:19)
오늘날 교회가 가르치는 ‘은혜’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은혜”와 달라진 것입니다. 다음의 내용은 평생 바울 신학을 연구한 유력한 학자 이한수 교수가 ‘복음이 율법을 성취한다’는 것이 바울의 ‘언약 신학’의 핵심이라는 것을 역설한 책 <복음과 율법> 서문에 총신대 김의원 총장이 언급한 것입니다.
“새 언약 백성이 성령으로 순종의 삶을 통하여 율법의 내용을 실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소금의 역할을 잃은 한국교회가 귀 기울여야 할 부분이다.” 김의원 총장, 서문, 5~6.
“소금의 역할을 잃은 한국교회”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소금’이 맛을 잃었으니, ‘소금’이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습니까? ‘언약 신앙’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 핵심인 ‘율법’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슬프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으로 복음을 가르치는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교회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주목해서 다시 읽으셔야 합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막 7:7; 마 15:9)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3)
① 여러분이 출석하는 교회가 ‘복음’, ‘성령’,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율법을 단지 ‘몽학선생’으로만 가르친다면,
② 만일, 여러분이 봉사하고 헌금을 드리는 교회가 죄를 지적하고 회개하기를 요청하지 않는 교회라면,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면,
③ 만일, 여러분이 교제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죄 용서’로만 연결하고, ‘하나님의 법’언약의 계명, 십계명에 순종할 것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면,
유감스럽지만,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미워하시는 “니골라 당의 교훈”이고, “니골라 당의 행위”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나를 헛되이 경배하였다.”라는 판결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떤 신자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게 됩니까?
니골라 당의 교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불법의 죄보다 더 심각한 것, 결정적인 문제는 ‘회개하지 않는 것’, ‘돌이키지 않는 것’, ‘바벨론에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신자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게 됩니까?
예수께서 “성도”라고 부른 사람들입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예수께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계명”은 명확하게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에서 부모 공경,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말, 탐냄을 다루는 5째~10째 계명은 기독교만 아니라, 여타 종교도 모두 인정하는 보편적인 ‘윤리’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계시록을 통해서 보여주신 “언약궤” 안에 담긴 십계명의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됩니까? ① 악의 소멸과 ② 새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것을 다루는 계시록의 절정에서 ‘일곱 천사 중 한 천사’가 반복해서 요한에게 하는 말이 바로 ‘그 경배 문제’입니다.
“나는…종이니 그리하지 말라” (19:10a; 22:9a)
“하나님께 경배하라” (19:10a; 22:9b)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오늘날 종말의 시대나 ‘하나님 신앙’의 핵심 문제는 ‘경배’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것이라고,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15, 21). 성도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고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계 14:12).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그 사람들이 성도로 간주 될 것이고, 그 사람들이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계명을 기록하신 하나님이 십계명 중에 이렇게 친히 그분의 손가락으로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 20:6)
예수께서 하나님의 계명명령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는 그의 명령계명이 영생인 줄 아노라” (요 12:50)
니골라 당의 교훈, 발람과 이세벨의 교훈은 모두 ‘하나님의 계명’을 대적하는 거짓 교훈, 멸망의 교훈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해서 ‘경배’하게 될 ‘새 예루살렘 성’에 어떤 사람이 들어갑니까?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고 축하할 예수의 ‘형제들’이며 ‘친구’들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이며’(출 20:6; 요 14:15, 21),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하나님께 경배”하는 자입니다(계 12:17; 14:12; 19:10a; 22:9b)
5. 예복을 입는다는 것
‘왕의 아들의 혼인식의 비유’에서 임금은 혼인식가모스에 참여한 사람들의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합니까? 그에게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마 22:12)라고 먼저 물어봅니다. 이것은 재판정에서 이뤄지는 일종의 심문과 유사합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 질문을 하는 임금은 어떤 품성을 가진 분이셨습니까?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식에 청하여 오라”(마 22:9, 10),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 14:21, 23)라고 명령하신 분입니다.
잔치의 주인이신 아버지 하나님은 길과 산울타리 가에 사는 거지와, 공동체와 함께 살 수 없는 형편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남루함 때문에 잔치 주인의 ‘체면’과 ‘명예’가 상할까 하는 마음으로 혹 거부하지 않도록, 종들에게 “강권하여” “청하여 오라”라고 하시는 고귀한 품성을 가진 분입니다. 초청은 전적으로 은혜의 초청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청한 사람이 합당한지’(마 22:8), 즉 ‘예복을 입었는지’(마 22:12) 살펴보고, 판단하시는 분입니다. 은혜에 합당한 열매, 순종이 있는지 달아 보시는 것입니다.
이 고귀한 품성을 가진 임금은 ‘아들의 혼인식’에 예복을 입지 않고 참여한 사람을 어떻게 합니까?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마 22:13). 이 판결은 번복되지 않는 영원한 판결입니다. 그리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혼인식’에 참여하는 자들은 외양상 ‘초청에 응한 사람’, 즉 ‘믿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믿노라고 하고, 예수를 주로 영접했다고 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즉 ‘청함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마 22:8),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 청함에 합당치 않은]
그러면 예복을 입지 않아 혼인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쫓겨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께서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힌트’를 주셨습니다.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마 13:40~42)
[ 예복을 입지 않은 = 청함에 합당치 않은 = 불법을 행하는 ]
우리는 앞 단락에서 예수께서 미워하시는 “니골라 당의 행위”가 은혜와 사랑을 말하면서 율법을 버린 자들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임금의 아들의 혼인식의 비유’와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서 다시 확인하게 되는 변함없는 사실,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중히 여기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복을 입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중요한 진리에 대해서 ‘힌트’를 주지 않으실 리가 없습니다. “기록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고 말한 같은 천사가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모스 데이프론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계 19:9)라고 말했습니다. 그 바로 앞 구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계시록의 일곱 송영 중 마지막 송영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식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 19:7, 8)
※ 혼인식가모스 후, 혼인 잔치가모스 데이프론이 거행된다.
일곱 재앙 때에 “큰 음녀”에 대한 심판이 시행된 후, 하늘에 허다한 무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놀라운 모습은 의미심장합니다. 어린양이 그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과 혼인식을 하는 것은 예수께서 왕 중 왕으로 통치를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나라 백성들이 입은 세마포는 의로운 품성에서 나온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를 의미합니다.
[ 예복을 입는다는 것 =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 ]
여기에서 “의로운”옳은 행실은 ‘하나님과 관련된’ 즉 천사가 이 단락을 보여주면서 거듭 말하는 바, “하나님의 계명”에 관한 것이며,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과 관련된 행위입니다(계 12:17; 14:12; 19:10a; 22:9b).
짐승의 표는 ‘경배’와 관련해서 주어지는 표였습니다(게 13장). 짐승의 표를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하나님께 경배”하는 대신, ‘짐승의 명령’에 따라 ‘첫째 짐승과 용을 경배’하였습니다. 따라서 세 천사가 전하는 “영원한 복음”(계 14:5)은 ‘경배’와 관련된 복음입니다.
그러면 성도들(계 14:12)이 “하나님께 경배”한다면, ‘어느 날에’ ‘어떻게’ 경배해야 할까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 경배”하는 “계명”은 십계명의 제1~4계명, 특히 제4계명입니다. 그리고 천사가 전하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계 14:7)라는 말씀은 축자적으로 십계명의 제4계명에서 반복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 11).
하나님은 ‘어느 날에’ ‘어떻게’ 경배해야 할지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제칠일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경배”하는 “의로운 행위”(계 19:8)인 것입니다. 계시록이 보여주는 종말의 상황은 용과 짐승이 ‘거짓 경배’로 미혹하고 그 경배를 강요하는 상황이지만,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하나님을 경배”함으로 ‘참된 경배’를 지켜내고 회복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 예복을 입는다는 것 =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경배함 ]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하라”라는 명령에 따라 하늘에서도 “매 안식일에” 하나님 앞에 나아와 경배할 것이라고 이사야는 예언하였습니다(사 66:23).
또한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개별적인 무리’가 아닙니다. ‘참된 경배’를 회복하라’는 세 천사의 외침에 ‘연합하는 자’이며, 그것을 위해 “수고”하는 자입니다(계 14:13).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믿음을 지키기를 원하는 <변화> 독자 여러분!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는 일이 머지않아 끝나게 될 것입니다. 혼인 잔치에 참여할 자들의 복된 명단이 곧 확정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의로운 행실”과 ‘참된 경배’가 어린양과 천사들 앞에서 입증이 되어 여러분의 이름이 초청 명단에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의 의로운 행실”로, ‘참된 경배’로 그 믿음이 입증되도록 하나님은 용과 짐승에게 ‘잠시’ 권세를 허락하실 것이고, 따라서 국가가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를 지정하고 핍박하고 강압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cf. 계17:12). 이 핍박을 통해서 혼인 잔치에 들어갈 자와 들어가지 못할 자들이 결정될 것입니다.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위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계 15:2, 3).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계 14:12)는 어떻게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나게 되었습니까?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는 길은 ‘오직 한 길’입니다. 다음의 말씀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계 20:4)
그들은 그들의 인도자인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처럼 죽임을 당함으로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세상 일 때문에, 또는 니골라 당의 교훈에 미혹되어서, 또는 짐승의 강압 때문에 ‘참된 경배’를 타협한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의 명단에서 제외될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 신 6:5)라고 말씀하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신 4:29).
큰 목소리로 하나님을 찾는다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길게 기도한다고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진실하고 정직하고 간절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분을 바랄 때에 그분이 응답하시며 우리는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