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이 말하는 사람의 본질은 무엇인가?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2:7).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103:14).

(1) 창조와 영혼불멸 교리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창조로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심으로 산 사람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영혼불멸을 믿는 신앙은 창세기 2 7절의 내용을 영혼불멸적 개념으로 설명한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헌법(김봉익, 한국장로교출판사, 1997, 개정 15) 4부 제4 2항에는하나님께서는 모든 다른 피조물을 지으신 후에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 1:27). 이 사람에게 이성적이고 불멸의 영혼을 주( 2:7; 12:7; 23:43; 10:28)”셨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불어넣으신생기불멸의 영혼이라고 한 것이다. 

(2) ‘불멸의 영혼근거 성경절 분석

그러면 먼저 [장로회 헌법]에서생기불멸의 영혼이라고 해석하는 근거 성경절을 하나씩 분석해 보자. 창세기 2 7절 이 외의 성경절을 먼저 간단하게 분석해 본 후에, 문제로 제기된 창세기 2 7절을 상세히 검토해 보겠다. 사실상 여기에서 살펴보려고 하는 성경절들은 이미 제2부에서 다루었던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12:7). 

<분석> 여기에서은 원어로루아흐인데 본래바람이라는 뜻이고 성경에서는호흡이나생명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불멸의 요소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구절이다. 이 성경절은죽음에 대한 히브리인들의 관용적인 표현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을죽기 전에 기억하라는 말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23:43). 

<분석> 이미 설명된 대로, 예수님 십자가 옆의 강도는 예수께서 왕으로 임하실 때에, 즉 재림하실 때에 구원해 주실 것을 요청한 것이고, 예수님은 그 요청을 바로 그날, 그 시간에 들어주신 것이다. 이것은불멸의 영혼을 뒷받침해 주는 성경절이 아니라 영혼의 불멸을 전제로 할 때 이용되는 성경절에 불과한 것이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10:28). 

<분석> 이 성경절의영혼은 헬라어로프쉬케인데, ‘영혼이라고 번역한 것은 본문에 조화되지 않는 것이며, 사도행전 14 2절에서처럼마음으로 번역해야 마땅한 것이다.

[분석 결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불멸의 영혼을 불어 넣으셨다는 근거로 제시한 위의 세 성경절 가운데 단 한 가지도, 사람에게 넣어진생기가 불멸적 요소임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그러면 다시 창세기 2 7절로 돌아가서 창조의 과정에서 사용된 세 낱말’, ‘생기’, ‘생령을 가지고 사람의 본질에 대하여 살펴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2:7). 

(3) 사람의 본질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셨다. 사람을 만든 재료는 문자 그대로 흙이다. ‘에 해당하는 원어는 히브리어아파르이며, 이것은 땅의 미세한 입자(粒子)를 가리키는티끌”( 38:38; 18:42)이나진토(塵土)”( 22:24; 7:5)를 의미한다. 모든 물질의 기본 구성 요소인 원소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음의 도표에 보는 바와 같이 흙의 원소와 인체의 구성요소가 일치하고 있는 것은 성경의 과학성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기­ – 이 성경절의생기는 히브리어니슈맛 하임을 번역한 단어이다. “호흡이라는 뜻을 가진네솨마살아 있음”(living)을 뜻하는 히브리어하이가 합쳐져서 된 합성어로서생명의 호흡’(breath of life)이라는 뜻이다. ‘불멸의 영혼이라는 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단어이다. 생기에 어떤이성적 요소를 가미하여 불멸의 요소로 설명하는 것은, 헬라의 이원론 사상을 성서적으로 풀어 보려고 무리한 시도를 하는 것이다.

생령­이 말의 히브리어는네페쉬 하야이다. ‘하야살아 있는 존재를 가리키는 낱말이고, ‘네페쉬나파쉬’(뜻:숨쉬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로서생물”(生物)을 가리킬 때 주로 많이 쓰인다. 창세기 1 20, 21, 22, 30절에 나오는생물이라고 하는 말은 모두네페슈를 번역한 것이다. 그러므로생령으로 번역된네페쉬 하야라는 말의 정확한 뜻은숨 쉬며 살아 있는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이전의 성경들에서는네페쉬 하야살아 있는 영”(living soul)으로 번역하였고, 한국말 개역 성경에도생령이라고 번역되었으나, 최근에 나오는 성경들 「새 국제역」(NIV), 「개정표준역」(RSV) 등에서살아 있는 존재’(living being)로 바꾼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공동번역」 창세기 2 7절에서는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라고 번역하였고, 「현대인의 성경」에서는그때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티끌로 사람을 만들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산 존재가 되었다.”고 번역함으로 원어에 훨씬 가까운 표현을 사용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생령이라는 말이 자칫 잘못하면 무슨살아 있는 혼령과 같은 의미를 주기 때문에,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된산 존재라는 말이 원래의 의미를 더욱 실감나게 살린 것으로 생각된다. 

흙과 생기와 생령의 관계­ – 이 관계는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이해하기 쉬우므로 가스자동차의 비유로 설명하고자 한다. 

은 가스자동차의 모든 부속품에 해당한다. 흙의 원소로 만들어진 사람의 완성된 상태는, 아직 가스를 주입하지 않아서 움직이지 못하는 자동차와 같다. ‘생기는 가스에 해당된다. 자동차에 가스를 주입하면 자동차의 모든 기능이 활동하게 되듯이, 완성된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으니까 신체의 기능이 모두 살아난 것이다. ‘가스자체에 어떤 기능이 부여된 것이 아니듯이, ‘생기(호흡)’ 자체에 어떤 기능이나 이성이나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의 엔진과 모든 부속품에 자동차를 움직이는 기능이 이미 들어 있듯이, 인간의 이성과 판단력을 조절하는 모든 기능은 이미 대뇌 속에 포함되어 있다가 생기가 들어감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사람의 생기와 동물의 생기가 다른가성경에는 사람과 일반 동물의 생기가 언제나 같은 것으로 나타난다.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3:19). 

여기에서호흡이란 히브리어로루아흐이다. 짐승의 호흡이나 사람의 호흡이나 모두 동일한 것이다. 그래서 짐승이나 사람이나 호흡이 끊어지면 모두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시 가스자동차의 비유를 들자면, 자동차를 제작할 때에버스로도 제작하고승용차로도 제작을 한다. 동일한 가스를 주입해도, 버스로 제작되면 버스의 기능을 하는 것이고 승용차로 제작되었으면 승용차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사람과 짐승이 다른 것은호흡이 다른 것이 아니라창조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기능을 서로 다르게 만드신 것이다. 

성경은 노아 홍수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7:22). 「공동번역」 성경에서는마른땅 위에서 코로 숨 쉬며 살던 것들이 다 죽고 말았다.”고 번역하였다. 이 죽음 속에는 두말할 것도 없이 그 당시 죽었던 사람들과 짐승들이 모두 포함된 것이다.

 

2. 헬라 사상의 유입과 [70인역] 성경의 문제점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한신대 구약학 교수인 K 박사의 설명을 인용하고자 한다. 다음의 내용들은 영혼 문제와 관련하여 <목회와 신학> 잡지 1996 8월 호에 게재된 K 교수의 논고 중에서 몇 부분을 발췌하여 인용한 것이다. 평신도들에게는 다소 난해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K 교수 본인의 의도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문장을 그대로 인용한다. 

(1) 창세기 2 7절의 생기와 생령의 문제에 관하여

창세기 2 7절에 의하면 인간은땅 표면의 먼지(아파르 민 하아다마)’ 속에 하나님께서생기를 불어넣으셔서 형성된생명체(네페쉬 하야)’로 정의되고 있다. 

이것은 더 이상 분명하게 규정되고 정의 내려질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의 본질을 명료하게 정의하고 있다. 이 구절에 대한 히브리 사상은 영혼을 육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보거나 인간을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보는 이분법적 요소가 전혀 없다. 인간을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보는 견해는 구약 성서의 구원사적(救援史的) 문맥과는 전혀 조화가 되지 않는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었고, 영혼은 육체보다 가치 있는신과 유사한 영적인 것(호모이오시스)’이며, 죽을 때 그 둘은 비로소 분리되어 육체는 썩어지고 영혼은 불멸을 누린다는 희랍적 사고는 창세기 2 7절의 히브리적 인간 이해 속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즉 사멸적인 육체 속에 불멸적인 영혼을 하나님이 불어넣으셔서 인간을 만드셨다는 유형의 논조는 여기에서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창세기 2 7절에서, 인간 생명은 절대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께 귀속되었다는 그 귀속성을 특별히 강조하는 의미 이상을 도출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목회와 신학, ‘96. 8월 호, 157).

K 교수는 매우 정직하고 정확한 논조로 창세기 2 7절을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원래 영원히 살도록 창조되었으나, 그것은 조건적이었다. 선악과를 먹지 않는 조건 그리고 계속해서 생명과를 먹을 때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2:17). 인간은 무조건적인 불멸의 존재가 아니었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한 인간 속에 하나님께서영혼이라고 하는 불멸의 요소를 넣으셨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억지이며,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사람의 마음대로 조작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2) 70인역[헬라어 번역본] 성경의 문제점에 대하여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는, 성경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히브리 사상을 헬라[희랍] 사상으로 변형하려고 많은 시도를 하였다. 이에 대하여 K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히브리어 구약 성서는 하나님의형상’(첼렘)과 하나님의모양’(드무트)을 단순히 동의적 평행법으로 반복 병렬시키면서 그 뜻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희랍어 역본은 오히려에이콘’(형상)호모이오시스’(모양) 사이의 엄격한 질적 차이를 강조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희랍어 역본은 인간의 타락과 함께호모이오시스즉 하나님의 신적인 본질과비슷한 것’(호모이오시스)은 소실되고, 단지 인간적인 것, 에이콘만 남게 되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창세기 3장의 타락설화 이후에 나오는호모이오시스’(모습)라는 표현은 모두 삭제해 버렸습니다. 그 대신에이콘’( 5:1) 또는이데아’( 5:3)라는 표현으로 대치시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희랍 역본은 구약 성서가 인간을 플라톤주의적으로(플라톤의 「파에돈」처럼) 이해하여 인간이 죽을 때는 마치 영혼과 육체가 나누이는 것처럼, 또는 영혼은 육체보다 더 우수한 신적 본질에 속하는 것처럼 생각한 것으로 오도(誤導)하였던 것입니다”(목회와 신학, 1996. 8월 호, 156, 157).

K 교수가 지적한 이 문제는, 헬라의 철학적 사상이 성경의 히브리적 사상에 침투하여 성경의 여러 부분들을 본래의 의도에서 벗어나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비성서적 사상을 주입시킨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다. 이미 설명된 대로, 성경의 히브리적 사상은 사람을 몸과 영혼으로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을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헬라의 철학 사상은 언제나 사람을,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이분법에 의해서 설명한다.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은 헬라의 이러한 이분법적 사상을 성경에 주입시키기 위해 원문과는 조화가 되지 않는 무리한 번역을 시도한 것이다. 

그 가장 대표적인 시도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할 때에 말씀하셨던 내용,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1:26)라는 대목을 변형시킨 것이다. 성경 기록의 배경이 되고 있는 히브리 사람들의 문학적 표현 중에는 동의적 혹은 반어적 평행법으로 어떤 내용을 강조 혹은 대비시키는 문장들을 매우 자주 사용한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성경절 중에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19:105)라는 말씀이 있다. 여기에서이나은 모두 동의적 평행법으로 사용된 단어이다. 다른 의미로 쓴 것이 아니고 같은 의미로 쓴 것이다. “이나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창세기 1 26절에 나오는형상이나모양은 동의어로 쓰여진 것이지, 다른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70인역」에서는 헬라의 인간에 대한 이분법적 사상을 성경에 주입시키기 위한 의도로 이 두 단어를 분리하여 설명한 것이다. 

형상인간적인 것으로 해석하여에이콘으로, “모양신적인 것으로 해석하여호모이오시스로 번역함으로 사람에게인간적인 면신적인 면이 혼합되어 있다가, 사람이 타락한 이후로는신적인 면’(“모양”, 호모이오시스)은 없어지고인간적인 면’(“형상”, 에이콘)만 남은 것으로 설명하였다. 이러한 개념을 근거로 하여, 사람이 죽을 때에 죄 된 몸에서 숭고한 영혼이 분리되어 나간다는 이론을 발전시킨 결과 헬라의 영혼불멸 사상이 마침내 교회 안에 교리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오늘날 이 사상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의 생각과 교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두렵고 놀라운 일이다. 

 

3. 성경이 말하는 죽음이란 무엇인가?

(1) 성경의 죽음

성경은죽음을 미화시켜 말하지 않는다. ‘죽음원수라고 말한다.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 15:26). 생명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는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딤후 1:10) 분이시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 20:14)게 된다. 

사망은 죄의 결과로 온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원수요 가장 피하고 싶은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면하려고 애를 쓴다. 만약 영혼불멸의 이론대로, 의인은 죽음과 동시에 영혼이 천당으로 간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을 뿐더러, 자살은 못할지언정, 죽을병에 걸리면 치료할 필요도 없고 회복되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려고 힘쓸 필요도 없다.

(2) 소크라테스와 예수의 죽음

오스카르 쿨만은 영혼불멸설이 성서적이 아닌 것임을 주장하는 그의 논문에서 소크라테스와 예수의 죽음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영혼불멸 이론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는 매우 초연한 모습으로 죽음을 받아들였는데, 그것은 바로 영혼불멸 사상에 근거하여 죽음을 매우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영혼불멸을 진실로 믿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소크라테스처럼 죽어야 마땅하다. 

그의 이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영혼은 육체 속에 갇혀 있지만 영원한 세계에 속해 있다. 육체는 본질적으로 영혼과 다른 것이므로, 육체는 영혼을 가두어 두는 감옥이다. 영혼은 육체로부터의 해방을 기다리고 있으며, 죽음을 통해서 그것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죽음은 아름다운 것이며 영혼의 위대한 친구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이라도 하듯이,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매우 초연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예수의 죽음반면에 인간의 생명을 창조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인성적 측면에서,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전율하고 있었다.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14:32~36).

그리고 그분은 숨을 거두시며 이렇게 절규하셨다.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15:34) . 

죗값으로 인한 육신적 죽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는 것처럼 절규하셨던 예수님은, 죽음에 대하여 소크라테스보다 무지하여 그러셨을까? 결코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에 대하여 무지하였던 것이다. 스스로 만든 철학과 신념으로 그렇게 죽은 것이지,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기초로 하여 죽음을 이해하고, 철학과 신학이 섞여진 애매한 이론에 의해서 영혼불멸설을 신봉하면서,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분리되어 천당이나 지옥으로 간다고 믿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통탄할 일이다.

예수의 죽음은 인간의 죽음이다 ­- 예수님의 죽음은 인간의 죽음과 다른 것인가? 그렇다면 신학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인간이 죗값으로 받아야 할 죽음을 예수님이 대신 당한 것이라면, 예수님의 죽음은 반드시 인간의 죽음이어야 한다. 그 예수님의 죽음의 상태가 어떠하였는가? 죽자마자 즉시 영혼이 분리되어 하나님의 품으로 가셨는가? 아니다. 이미 공부한 대로 부활하신 직후에도, 마리아가 그를 찾아왔을 때, 아직 아버지께로 가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20:17). 인간이 얻게 되는 영생도, 예수님과 같은 부활의 경험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완성되는 것이다. 

(3) 성경이 말하는 죽은 자의 상태

모든 계획이 끝남 – ­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146:4). 현대어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었다. “죽고 나면 먼지로 돌아가 그날로 그들이 세워 두었던 계획은 끝장나고야 만다.”

죽으면 모든 것이 소멸됨 – “사람은 죽으면 소멸되나니 그 기운이 끊어진즉 그가 어디 있느뇨”( 14:10).

죽으면 아무것도 모름 –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라”( 9:5).

죽은 자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함 –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 내려가는 아무도 못하리로다”( 115:17).

음부에는 아무것도 없음 –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9:10).

범죄 하는 영혼은 죽음 ­ –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 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18:4).

(4) 죽음에 대한 성경상의 표현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전 15:51).

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5:39).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고전 11:3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5:14).

성경은 죽음을 잠자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잠들어 있다는 것은 일어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믿음으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은 이미 생명으로 들어간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5:24). 그래서 성도의 죽음에 대하여 성경은 잠자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언제 일어날 것인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죽음에서 일어나 불멸의 몸을 입게 되는 것이다.

 

4. 영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1) 영혼불멸 이론을 만들어 낸 인간의 딱한 사정

이미 공부한 대로, 사실상 영혼불멸 사상은 사탄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선악과를 먹으면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하여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거짓말로 시작된 사탄의 술책이 결국에는, 몸은 죽었지만 죽지 않은 그 무엇이 있으므로 자기가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한 속임수에서 발전된 것이 곧 영혼불멸의 사상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러한 술책과 속임수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 수용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사람에게 부여된, 죽고 싶지 않은 본능[ 3:11,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창조된 사람이 범죄함으로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다시 영생할 수 있는 길을 이미 준비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과 무관하게 믿음 없이 살아가던 사람들이 죽음을 피하여 영원히 살고 싶은 본능과 욕망 때문에 사탄의 이러한 속임수에 쉽게 빠지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죽어도 부활을 통해서 얼마든지 영원히 살 길이 있는데, 하나님을 믿지 않고도 영원히 살고 싶은 인간의 딱한 사정 때문에미라도 만들고영혼불멸이라는 이론을 만들어 그것을 신봉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죽지 않는 문제에 집착하여 몰두한 나머지, 영혼의 불멸이라는 이론을 만들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2) 영생은 부활과 함께 시작된다

인간의 불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는 얼마든지 불멸과 영생이 가능하다. 인간 스스로 이루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너무 성급하게 죽자마자 영생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죽어 있는 시간, 잠자는 시간은 지루하게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다. 전신마취를 당하여 수술을 끝낸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마취당하기 직전의 기억에서 다시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은 자의 입장에서 보면, 무의식의 죽음에서 깨어나는 순간 부활과 함께 영생이 이어지는 것이므로, 죽음과 함께 영생이 시작된다고 해도 크게 빗나간 말은 아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다음의 몇 가지 성경절을 음미하면서, 예수님의 재림과 부활의 날을 기다리면서 성도로서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도리일 것이다. 

(3) 산 자나 죽은 자나 영생의 출발점은 같다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살전 4:15). 

이 성경절은, 영혼불멸설을 인정하여, 죽은 의인의 영혼은 천당으로 간다고 믿는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말씀이다. 영혼불멸설 에 의하면 죽은 자들의 영혼이 먼저 천당에 가는 것이 순리이다. 그러나 이 성경절은 정반대의 개념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깨우침을 주고 있다. 살아 있다고 해서 먼저 하늘에 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죽은 자들이 부활한 후에 같이 갈 것이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는 것이다. 

(4) 죽은 자의 부활과 산 자의 승천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 17). 

부활과 영생의 원리는 분명하다.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한다. 그리고 재림 시에 살아 있던 성도들이 잠들었다가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그 이후로는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되는 것이다. 

(5) 부활한 몸의 상태는 어떠한가?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50~53). 

부활 후에도 여전히 몸을 갖게 될 것인데, 그것은 지금처럼, 죽으면 썩을 몸이 아니라 죽지도 않고 썩지도 않을 몸을 입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그 몸이란,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당시의 그 몸의 상태와 같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이고 완성이다.

이미 언급한 대로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죽었던 의인들이 부활하여 살아 있던 의인들과 함께 공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다음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로 올라간다. 그 이후에 세상은 어떤 상태로 있을 것이며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 이 부분을 상세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상당한 지면과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해당되는 성경절만 간략하게 소개한다. 

 

5. 재림 이후의 역사는 어떻게 될 것인가?

(1) 재림 시 살아 있던 악인들의 죽음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8, 9).

예수의 재림과 함께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늘로 올라간 다음에는, 이 땅에 살아 있던 악인들은 재림의 영광으로 모두 죽임을 당한다. “그날에 여호와에게 죽임을 당한 자들의 시체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즐비하게 흩어져 있을 것이며 그들을 위해 슬퍼하거나 그들의 시체를 싸서 묻어 주는 자가 없어 그 시체들이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 거름더미 같을 것이다”(현대인성경, 25:33). 죽은 악인들은 죽은 상태로 땅에 있게 된다. 

(2) 사탄이 결박됨:재림과 함께 천년기가 시작됨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20:1~3).

의인은 모두 천국으로 갔고, 악인은 모두 죽었다. 이 땅에는 사탄만 남게 된다. 그것 자체로 사탄은 이미 결박된 것이다. 그 기간이 1,000년이다. 천 년 후에 사탄이 잠깐 놓여 나와서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이다. 

(3) 땅은 황폐한 상태로 남아 있음:천년기 동안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 전의 땅은 에덴동산 같았으나 그 후의 땅은 황무한 들 같으니 그 들을 피한 자가 없도다”( 2:3).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폐허가 된 지구 땅 덩어리는 무너진 건물 더미와 함께 시체들이 널려 있는 참혹한 상태로 되어 있을 것이다.

(4)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늘에서 죽은 악인 심판:천년기 동안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20:4, 6).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고전 6:3).

사탄이 결박되고 이 땅이 황폐한 상태로 버려진 1,000년 기간 동안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늘에서 악인들과 악한 천사들의 죄악을 심리하는 심판 사업을 할 것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5) 하늘의 가족들이 지상으로 이주함:천년기 지난 후

그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하리라”( 14:4, 5).

천 년이 차면, 하늘의 모든 가족이 이 땅으로 이주하여 내려올 것이다. 원래 인간의 고향, 아담과 하와가 거주하였던 에덴동산은 하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 땅에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게 될 영원한 나라는 이 땅에 세워지는 것이다.

(6)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옴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21:2).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하늘 새 예루살렘 도성도 이 땅으로 내려온다. 사도 요한은 계시 가운데 그 장면을 분명히 목도하였다. 

(7) 사탄이 잠시 놓이고 죽은 악인들이 부활함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20:7, 8). 

성경은 악인들의 부활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5:28, 29). 여기에서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은 부활한 악인들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천 년이 찼을 때 악인들도 부활하여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습과 새 예루살렘 도성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때에 사탄이 저들을 충동하여 하나님의 백성들과 예루살렘 성을 치려고 할 것이다. 

(8)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함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20:9). 

사탄과 그를 추종하는 모든 무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하려고 하는 순간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할 것이다. 모든 죄악의 흔적과 결과와 죄의 장본인이었던 사탄이 악인들과 함께 멸망당할 것이다. 

(9)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됨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1:1). 

죄의 장본인 사탄과 악인들이 소멸된 후 하나님께서 이 지구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재창조하시고 그곳에서 성도들이 영원히 거하게 된다. 악인은 모두 죽었다. 죄의 역사는 끝났다. 이제 이 우주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만 남게 되었다. 만물이 새롭게 되었다. 잃어버렸던 낙원을 되찾은 것이다. 

(10) 하나님과 성도들이 영원히 함께 살게 됨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20:11).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21:3~5).

새롭게 창조된 세상에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영원히 함께 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위해서 마련해 놓으신 구속의 계획이다. 이것은 환상도 아니고 꿈도 아니고 막연한 이상도 아니다. 조만간 우리 중에 나타날 현실의 세계이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시작하여 죄로 얼룩진 투쟁의 역사가 끝나고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하셨던 죄 없는 세상의 아름답고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역사가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그때에 우리 모두가 함께 그곳에 있게 될 장면을 생각하면 매우 감격스럽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6. 영혼불멸을 믿는 자들의 위험과 불행

(1) 사탄의 갈고리

영혼불멸 사상은 단순히 그것을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를 넘어 사탄이 사람을 자기의 소유물로 끌어들이는 갈고리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탄은 사람과 다른 차원의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을 속이는 변장과 술수와 기적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4, 15). 

사탄에게 이용당하는 사람들도 사탄의 하는 일을 어느 정도 흉내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초인간적인 현상에는 대부분 사탄의 간계가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심지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키는 이적과 기사도 대체로 사탄의 속임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24:24).

(2) 강신술의 기초가 되는 영혼불멸설

죽음의 세계에 대하여 무지한 사람들이 죽은 자의 혼이 살아 있고 활동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면, 사탄은 죽은 자의 혼이 나타난 것처럼 가장하여 얼마든지 그러한 사람들에게 공포감도 주고 속일 수도 있게 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심령과학이나 강신술에 빠져 있는 것은, 죽은 자의 상태와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하여 그 실체를 모르고 영혼불멸설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억만장자의 아들 동굴인>의 저자인 더글라스 배칠러의 어머니는 연예인이었다. 배칠러는 그의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와 동료 연예인들의 생활의 단면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연예계에 종사하는 어머니의 친구들은 대개가 점성술, 손금 보기 및 강신술 따위를 좋아했다”(배칠러, 동굴인, 11). 연예인들뿐 아니라 오늘날 수많은 정치인들, 기업인들, 지식인들이 점차로 영계(靈界)의 유혹에 빠져 들어 가고 있는 것은 매우 두렵고 염려스러운 일이다. 영혼불멸 사상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속히 지워 버리지 않으면, 모두 그러한 악령의 세계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3) 영혼불멸 신앙의 파멸적인 결과

영혼불멸 사상을 믿고 있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그 실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내용은 미국의 랜디 바버 목사가 저술한 <사탄의 속임수>라는 책에 소개된 실화이다. 

시애틀에서 목회하고 있을 때 나는 베티라는 숙녀와 알게 되었다. 베티는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했으며, 집 근처에 있는 유명한 교회에 출석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께 가장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베티는 약국에서 얻은 책자를 통하여 메타피직스(Metaphysics:기독교를 가장한 강신술)의 교리에 접하게 되었다. 메타피직스에서는 그리스도는 영매자이시며,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당신의 제자들(우리를 포함하여)이 영매가 되도록 가르치시기 위해서라고 가르친다. 메타피직스는 영혼불멸을 가르치며, 교훈과 충고를 받기 위하여 사랑하는 죽은 자들과 만나는 일이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

어느 날 베티는 신문의 교회란에서 메타피직스 교회의 광고를 보았다. 베티는 그곳에 참석하여 그들에게 걸려들었다. 집회를 통하여 베티는 그녀의 죽은 남편과 교통하는 방법을 배웠다. 죽은 남편은 베티에게 영적인 문제를 알려 주고 녀의 매일의 생활에 있어서 세세한 부분까지 지도해 주었다. 얼마 안 가서 그는 베티의 아파트에도 나타났다. 그녀가 먼저 다니던 교회에서 사람이 죽을 때 아주 죽는 것이 아니고 영혼은 살아있다고 배웠기 때문에, 베티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다고 믿었다. 

한 달 동안은 베티가 요청하는 때에만 나타나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는 제멋대로 나타나더니, 어떤 때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나타났다. 얼마 안 가서 그는 일요일 아침의 TV 종교 프로그램 가운데 어떤 것은 볼 수 있고 어떤 것은 볼 수 없는 것인가 하는 것까지도 이야기해 주었다. 그가 보지 말라고 한 프로그램을 보려고 그녀가 고집을 부리면 그는 매우 화가 나서 그녀의 다리를 뜨겁게 지져 주곤 하였다. 나는 베티의 다리에 나 있는 화상 자국을 직접 목격했다. 

여러 해가 지나서 베티는 정말 영매가 되었다. 베티는 영계로부터 직접 메시지를 받았으며, 어디로 보내야 하는 메시지인 것까지도 지시를 받았다. 나는 베티에게 이 메시지와 그의 출현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아냈느냐고 물었다. 베티는 대답하기를, 알고 말고요, 사탄으로부터 오고 있음을 이제는 압니다.’라고 하였다. 이런 일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가 하고 다시 물어보았다. 베티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베티에게 야고보서 4 7절을 읽어 주었다. ‘그런즉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오직 하나 안전한 길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사실을 믿으며, 전적으로 자신의 생애를 하나님께 헌신하는 길밖에는 없다. 예수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사람은 사탄이 건드릴 수조차 없다.”

이 이야기는 영혼불멸설을 신봉한 결과가 어떤 것임을 단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사람의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다고 믿으면, 사탄의 노리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은 영원한 파멸로 가게 되는 것이다. 이 위험한 사상을 하루라도 빨리 지워 버리고 성경에 기초한 건강한 신앙으로 무장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위험에서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이다. 

(4) 영혼불멸 사상은 반드시 머리에서 지워 버려야 함

이미 설명한 대로 사탄의 거짓말과 속임수에서 비롯되어 헬라의 철학 사상으로 자리를 잡아 기독교로 유입된 영혼불멸 사상은 분명히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철저하게 신봉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신비하고 두려운 현상이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결코 쉽게 지워 낼 수 없는 왜곡된 교리이다. 그러나 진실된 마음으로 모든 신앙의 기초를 성경에서 찾으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지체하지 말고 이 영혼불멸의 사상을 머리에서 지워 버려야 한다. 이것을 지워 버리지 않으면, 조만간 틀림없이 사탄의 올무에 걸려 넘어갈 것이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머리에 새겨진 영혼불멸 사상을 버리는 것이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 올바르고 건전한 신앙은 영혼불멸의 신앙 대신에 부활의 신앙을 확고하게 가질 때에 시작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영혼불멸 사상과 부활의 신앙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며, 정직한 양심으로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영혼불멸 사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한 번 영혼불멸 사상으로 머리에 채색이 되면, 좀처럼 지워 내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지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어도, 심정적으로 정서적으로 그 사상의 흔적과 영향을 벗어 버리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수 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일단 어떤 올바른 가르침이나 진리가 지성적으로 확인이 되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일을 위하여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성서적이고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성령의 역사와 도움이 필요하다. 다음의 성경절을 읽고 기도하면서 올바른 길을 찾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14:26).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6:13).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낯설은 진리보다는 익숙한 오류를 믿고 싶어 한다. 유대인들이나 종교암흑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나익숙한 오류를 붙들고 있다가 영적인 패배를 경험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최후의 승리를 얻으려면 하루속히익숙한 오류를 포기하고낯설은 진리에 익숙해질 때까지 끊임없이 기도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심지어는 생명을 포기하고서라도 진리의 말씀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