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은 천재 수학자이며 철학자였다. 교만의 바다에서 만족이 없었던 그는 예수를 만나 겸손하게 되어 마음의 쉼을 얻었다. 교만의 처참한 구렁텅이를 떠나 겸비의 아름다운 천상의 자리에 나아가 하나님을 찬양했다. 교만은 실상은 밑이 보이지 않는 무덤의 자리요 겸비는 높음을 가늠할 수 없는 청명한 하늘의 자리다.

그는 구원자 예수를 만난 경험을 기록했다. “은총의 날, 1654 11 23.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철학자나 지식인의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 확신, 감동, 환희, 평화, 나의 하나님, 하나님 외엔 이 세상 일체의 것이 망각되었습니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은 당신을 모르오나 나는 당신을 아옵니다. 환희, 눈물, 눈물, 눈물.” 파스칼의 감동이 오늘날에도 유효할까? 하나님을 만남이 이 시대에도 가능할까? 가능할 것이다. 그런 감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의 영향력은 대한민국에서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렇다. ()세계적인 추세다. 교회에 밀어닥치는 세속화의 물결은 교회를 어디로 휩쓸어가고 있을까? 하나님을 버린 사회와 하나님이 버린 개인의 삶의 모습은 어떠할까? 성경이 없는 대한민국은 괜찮을까? 예수와의 만남이 주는 감동 없이 삶은 정말 안전할까? 

 

믿음은 본질적으로 원칙이다

신학교 3학년 때에 친구들과 함께 어느 기도원에 연구차 간 적이 있었다. 그 기도원의 원장은 여자 분이었다. 커다란 강당 중앙에 동그란 단상이 놓여 있고 그 위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설교를 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는 열광의 도가니였다. 그분의 설교의 본문은 성경 말씀인데 육두문자를 포함한 과격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이름을 저렇게 저급한 말과 섞을 수 있을까 싶었다. 두 손을 높이 들고 흔들며 펄펄 뛰는 모습이 영락없는 무당이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녀는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며 설교가 마치자 환자들을 불러냈다. 그리고 환부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치료를 하는 것이었다. 맨손가락으로 뜯어낸 암 덩어리들을 크고 작은 병들에 넣고 알코올을 채워 전시해 놓았다.

치료를 경험한 사람들은 기도원을 떠나지 못했다. 그들이 기도한다는 작은 방에 가보았다. 대화를 해보니 창세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성경은 가지고 있으나 성경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눈의 초점은 부실하고 하나님의 심기를 불편케 하면 또 병에 걸릴까 두려움이 그득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한국의 기독교가 이토록 타락할 수 있을까?’ 가슴이 아팠다. 감정과 기적에만 의지하는 신앙은 위험할 수 있다. 사탄도 기적과 이적을 행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태복음 24:24). 기적적인 치료의 경험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신앙에서 감정과 기적은 중요한 것이지만 감정은 성경의 진리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하고 깊은 감동이어야 한다. 기적은 있으면 감사하고 없어도 매일의 삶이 기적이다. 믿음은 원칙이다. 성경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린 원칙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로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니라”(요한복음 5:39).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복음 17:3). 예수를 모르는 신앙, 감정에 휘둘리고 기적에 환호하는 신앙, 그것은 미신이다.

 

바울에게 복음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사울(바울)은 세상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당시 최고의 스승인 가말리엘에게 배웠고, 71명으로만 구성된 예루살렘 공의회 회원이었다. 로마 시민권자였고 집안은 부유했다. 그런 그가 다메섹으로 가던 중 예수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놀라운 경험을 했지만 그 경험에만 의지하지 않았다. 홀로 아라비아 광야에서 수년을 성경을 공부한 다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작은 자란 뜻의 바울로 개명하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만방에 전파하는 일에 생애를 바쳤다. 스데반을 죽인 살인자인 사울이 바울 된 회심의 사건은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어서 유대인 지도자 계급은 큰 혼란에 빠졌다. 그 충격은 곧 분노로 바뀌어 바울은 극심한 핍박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믿음이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께 뿌리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백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니라”(로마서 1:1-4). 바울에게 복음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그에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였다.

바울은 세계의 수도, 로마에 가기를 열망하였다. 그는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를 가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쇠사슬에 묶인 바울의 모습에서 뿜어 나오는 하늘의 분위기는 간수들조차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감옥에 갇혀서 기록한 다음의 말씀을 보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4-7).

감옥에서도 자유롭고, 인생의 고난에서도 기뻐할 이유를 찾는 자, 그가 그리스도인이다. 거대한 빙하는 바다 아래 유유히 흐르는 조류에 몸을 맡기며 바다 표면의 거친 파도를 역류한다. 바울의 내면에는 예수가 그리스도임에 대한 확증이 거대한 조류가 되어 어떠한 세파도 그의 삶의 방향을 바꾸거나 그를 휩쓸어 갈 수가 없었다. 그는 세상을 유유히 역류했다. 

 

본회퍼, 이 시대를 울리다

서슬 퍼런 나치 독일에서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3) 목사는 1943 4 9일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기 4개월 전이었다. 그의 나이 39세였다. 그를 오래 지켜본 간수는 본회퍼 목사가 교수형을 당한 후 그의 마지막 날들에 대한 글을 펴내게 되었다. “그렇게 고귀하고 고결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에게 죽음을 알렸을 때 그는 짐을 깨끗이 정리하고 무릎을 꿇어 기도했다. 그리고 나에게 예를 차리고 인사했다. 그는 형장에 평안한 모습으로 걸어갔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그리스도인의 위기라고 할 것이다. 사도 바울과 같은 신앙, 본회퍼와 같은 그리스도인,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기독교인들과 같은 신앙의 소유자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나침반이 남북을 정확히 가리키듯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사람, 세상에 매매되지 않는 사람, 진리를 위해서는 죽음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사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확신하는 사람, 그런 그리스도인을 통하여 하나님은 죄의 역사를 끝내실 것이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디모데후서 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