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고향을 방문하게 되었다. 친구가 집을 지었다고 해서 집 구경을 하게 되었다. 바다가 보이는 남쪽 지방의 끝에 위치한 아름다운 집이었다. 친구 집 옆에는 수천 평의 유자 과수원이 펼쳐져 있었다. 과수원 주위에는 아름다운 나무들과 형형색색의 꽃들이 조화를 이루어 에덴동산 같았다. 우연히 주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분은 과수원을 접고 그 땅을 떠나기로 했다고 했다. 기후가 크게 바뀌어 유자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꿀벌도 하루아침에 죽어버려 버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아름다운 곳에 그런 아픈 사연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지구가 수상하다. 기후가 이상하다.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우리의 집이 무너지려고 하고 있다. 지구에서 내릴 수도 없는데 지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이 지구를 망치는 때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요한계시록 11:18). 우리 앞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하나님이 관리하라고 맡기신 땅, 사람들이 망치고 있다
사람들의 이기심과 탐심이 지구를 망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문제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그것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대로 가다가는 인류가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환경론자들은 목이 터지라고 외치고 있지만 국가지도자들은 멈출 생각이 거의 없고 사실 멈출 수도 없다. 과학자들은 지구종말시계를 12시 2분 전으로 맞춰놓았다. 역사에는 ‘만약’(if)이 없다고 했지만, 만약 인류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더라면 지구는 위기에 처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옳으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26-27).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귀한 존재이다. 물질로부터 진화되었다면 인간에게 무슨 인권이 있겠는가? 무신론자들은 인간을 물질로 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존중이 있을 수 없다. 인권의 뿌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이 창조됨에 있다.
이런 성경의 가르침을 가지고 지구의 모든 사람을 형제, 가족으로 생각한다면 지구를 이토록 아프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 모든 동식물을 사랑했을 것이고 이기적으로 그것들을 대하지 않을 것이다. 지구의 많은 문제는 예방이 되었을 것이다. 전(全)지구적인 위기는 인간의 탐심과 이기심으로 인한 타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구의 망가짐은 말세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에는 기근과 분쟁으로 굶주려 죽어가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있다. 사실 지구에서 생산되는 밀과 옥수수만으로도 전(全)세계 인구가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그 많은 밀과 옥수수는 남아도 거저 나누어 주지 않는다. 말과 소가 먹고 남아도 태평양에 버릴지언정 식량을 무기 삼고 가격을 유지하기 위하여 가난한 나라들을 돌아보지 않는다. 도와준다고 할지라도 그 식량은 군벌들이 중간에 빼앗아가고 정작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잘 전달되지 않는다.
사람이 희망이라고 하나, 하나님을 진실히 믿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로 인류애가 충만한 사람이 희망이지 사람에게는 근본적으로 희망이 없다. 인간의 역사가 깊어갈수록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은 절정으로 치달아 지구를 못살 곳으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 군대가 행하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보라. 그 전쟁으로 인하여 식량 위기까지 찾아오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21세기가 되었어도 그런 비인도주의적이고 비인간적인 전쟁을 벌이는 인간에게 무슨 희망이 있을 것인가?
예수님은 마지막 시대를 이렇게 예언해 놓으셨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의 식어지리라”(마태복음 24:6-7, 12).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디모데후서 3:1-5).
예수님의 말씀과 바울의 기록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 예수의 재림이 다가오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지구는 더는 버티기가 어렵다. 지구는 핵전쟁이나 지진이나 천재지변으로 역사를 끝내지 않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지구의 역사는 끝나게 될 것이다.
예수의 재림이 다가오고 있다
예수님은 지구가 망가지는 때에는 말세이므로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셨다. 마지막 때의 사건들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라”(누가복음 21:26)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마지막 때의 사건들이 예수님의 재림의 최종적인 징조는 아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에 관한 분명한 징조를 말씀하고 계신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태복음 24:14).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일이다. 온 세상 끝에 가면 누가 있을까? 내 이웃과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온 세상은 무엇보다도 내 이웃이다. 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면 그 이웃은 그의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것이다. 그러면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다.
예수의 재림이 다가오고 있다. 세상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사람이 바라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지구의 끝은 다가오고 있다. 5월, 6월인데도 대한민국은 한여름이고 인도와 파키스탄은 50도가 넘었다고 한다. 텍사스에 폭설이 내리고 시베리아의 동토가 녹고 있다. 동토에 갇혔던 메탄가스는 대기권으로 올라가 지구를 더욱 뜨겁게 데우기 시작한다니 지구온실효과는 더욱더 심해질 것이다.
지구에 일어날 미래의 일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것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마지막 시대 너머에 오고 계시는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볼 수 있다.
어떻게 재림을 확신할 수 있는가? 재림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는 무엇인가? 예수님 자신이시다. 예수님이 오시겠다고 하셨으므로 그분은 오실 것이다. 세상의 어떤 마지막 시대의 사건도 예수님 자신이 하신 약속만큼 분명한 재림의 증거는 되지 못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한복음 14:1-3).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