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26] 선한 일을 행해야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잖아요? 믿음으로 행하면 선한 일을 행하게 되지 않나요? 율법의 행위가 꼭 필요하나요?

[대답] 믿음으로 행한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믿음이라는 것이 너무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바울은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2:10)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그선한 일이 무엇인지, 어떤 동기로 해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또한새로운 삶 없이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헛됩니다.”로저스, 1603,, p. 78.

 

[질문27]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입니다. 즉 혼인 예복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판단 받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아시는데, 하나님께 우리의 믿음을 꼭 입증해야 하나요? 우리의 선행은 다만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아는 빛을 비추기 위한 것이지, 그것이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답변]그리스도의 의의 옷이 죄를 [덮기] 위한 망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우드워드, Lord our Righteousness (1696), p. 76.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는 사람은 그 동기조차 거룩해지고 선한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말입니다. 바울은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아 그의진액생기를 받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율법이 교훈하는 선한 일을 하게 되고, 범죄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 3: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맥박의 고동에 의해 생명이 있음을 알 수 있듯이, 살아있는 믿음은 능동적이며 무언가 은혜로우신 결과들 가운데 스스로를 드러낼 것입니다.” 따라서새로운 순종은 칭의와 분리할 수 없는 동료입니다.”맨튼, James (1651), IV:237, 264.

하나님의 집행 심판이 있기 전 그 심판이 합당한 심판이라는 것이 모든 존재 앞에 공개될 필요가 있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되었는지 하나님의 심판이 합당함이 입증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위가 증거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불완전한 행위와 영적 허약과 짐짓 죄를 덮는 것들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게 만들기 위한 성령의 호소이기 때문입니다.

 

[질문28] 성화가 참된 믿음의 증거인가요?

[답변] 하나님은자라나게 하시는 분이시며,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성령에 굴복하는] 선한 양심을 간직하려 하고, 또한 하나님 앞에서 곧게 행하려고 애쓴다면성화, 그대가 의롭다 함을 받았음이 확실합니다.”그린햄, Of Good Workes (1599), p. 450. “일단 진실하며 진짜인 것이 증명된 믿음과 순종은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관심의 선한 증거들입니다.”, Faith (1689), p. 44. “왜냐하면 우리 열매[행위]는 우리가 어떤 뿌리 위에 자라는가를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지요.”미상, Crispianism Unmask’d (1693), p. 56. 이러한 실제적인 행위가 성화의 증거이며 성령의 증거이지, 신비 체험을 성화의 증거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질문29]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들은 하나님 앞에 완전히 거룩하고 의로운 것으로 여겨지는 건가요? 아니면 우리가 거듭났다고 하지만 우리의 모든 행위는 다 누더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려지는 건가요?

[답변]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의 순종을 단순히 그들의 것이라 간주하지 않으시고 그것을그들 안에서의 행하신 그분 자신의 행위로 보십니다.넛톨, Congregational Quarterly (1951), p. 21. 하지만, 하나님은 최선을 요구하실 것이고, 그것은 우리에게 준 은혜와 기회에 따른 완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드러난 율법의 행위일 것입니다.

우리의 누더기와 같은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려지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도, 실은 첫째 질문과 쌍둥이와 같은 질문입니다. 인간은 범죄할 수밖에 없고, 믿음 때문에 구원을 얻는다는 식의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질문30] 율법을 준수하는 것을로 여기는 것은율법주의이지 않나요? 의는 오직복음적 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우리 안에 선한 일을 이루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고 성령이신데, 거기에 자꾸 행위를 하라, 노력하라고 하는 것이 율법주의의 다른 모습 아닌가요?

[답변] 먼저 아셔야 할 것은율법주의율법적인 것을 구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율법주의는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려는 다양한 시도를 말하는 것인 반면에, 율법적인 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것입니다.

성화의 지침이 되는 의는 율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G. 다운에임, Justification (1633), p. 78.)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율법적 완전에 있어서, 경건한 삶은 십계명에나타나 있는 대로하나님의 뜻에우리의 모든 행실을 절대적으로 일치시키는 J. 다운에임, Guide to Godlynesse (1622), p. 5.) 율법주의가 아니라내가 거룩하니(완전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부르심이 성취되는 삶입니다. 그러므로우리는 율법을 굳게 세우게 됩니다”( 3:31) 복음적 은혜는사람에게 순종올 명하며레이놀즈, Three Treatises (1634), p. 388. 또한 신자로 순종하게 하는데이런 순종일종의 율법의 성취입니다.”테일러, Regula Vitae (1631), p. 11. 따라서율법의 의와 복음의 의는 각기 종류가 아니고, 내용과 본질에 있어서 동일합니다.”펨블, 1625, p. 3.

마치 마음의 현이 없는데도 바람이 불어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 수 있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성령께서 모든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고(고후 5:14), 성령께서는 우리의마음, , ; 생각, 감정, 의지을 강하게 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3:16)라고 말씀하셨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딤후 2:1)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는 결코 유약한 호의, 수동적인 호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에 대하여 단호하고, 그분의 자비는 때로 악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가혹한 것처럼 보이는 조치를 취합니다. [참조] Robert B. Girdlestone, Synonyms of the Old Testament, 116..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율법에 불순종하는 것()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은 것은거짓 믿음이고 마샬, 1714, p. 274. “허울 만의 믿음입니다.프레스톤, 1629, p. 391.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12:2)라고 말씀하시면서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12:1b).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1:3),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2:12)라고 말씀하셨고, 예수님도 직접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13:24)라고 하셨습니다. 능동적인 의를 말씀하는 600개의 성경 구절이 있다고 말합니다.케빈, 269. “올바른 믿음역사하는 믿음입니다.프레스톤, 1629, p. 391.

믿음의 행위를 하라, 노력하라고 하는 것은 율법주의의 다른 모습 아닌가요?”라고 물으셨습니다. 제가 다시 묻고 싶습니다. 복음의 능력에 사로잡힌 생애에 나타나는거룩한 행함”Thomas Wyllie을 율법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분투하고 싸우는 것이 믿음의 선한 싸움(딤전 1:18; 6:12; 딤후 4:7)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