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세 전에 죽임 당한 어린 양으로 인한 즐거움
허블(Edwin Powell Hubble, 1889~1953)은 미국의 천문학자이다. 그는 우주가 그때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광대하며, 지금도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글로 묘사할 수도 없는 광활한 우주를 탐구하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엇을 찾았을까? 어둠인자로 덮여 있는 우주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별들이 신비한 눈을 반짝이며 여러분을 바라볼 때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무엇을 알고 싶은가? 아무 생각이 없는가?
사람은 무엇을 알고, 어떤 것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상실한 마음의 깊은 어둠에 갇혀 있다. 후에 우주의 태곳적을 보고자하는 열망으로 과학자들은 우주에 거대한 망원경을 쏘아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허블 망원경’이라고 명명했다.
우주의 깊고도 먼 태초를 보고자 하는 과학자들의 마음의 열망은 우주를 헤매며 무엇을 찾았을까?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깊은 법이다. 호기심으로 우주를 살피는 사람의 마음은 우주보다 깊다. 그러나 가장 깊은 곳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성경은 우주의 시작보다 깊은 곳, 팽창하고 있는 우주보다 넓은 곳, 인간의 언어가 닿을 수 없는 높은 곳, 즉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준다.
창세 전보다 더 멀고 깊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을까?
성경은 놀랍게도 하나님의 마음속에 “창세 이전에 죽임 당한 어린 양”(계시록 13:8)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린 양은 인류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 1:29). 창세 이전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니! 이것은 인간의 마음의 입을 두 손으로 가리게 하는 위대한 발견이다.
2. 창세 전에 죽임 당한 어린 양은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이다
바울에게 영원한 안식을 얻게 한 것은 무엇인가? 그를 찬양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에베소서 1:4-6).
죄가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가 세상에 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 창세 전에 말이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불러내심이다. 무에서 유를 불러내신 것처럼, 생명 없는 죽음에서 살아있는 생명으로 나사로를 불러내신 것처럼, 우리의 이름과 존재는 하나님의 마음에서 택하심을 받고 생명으로 불러냄을 받았다.
심지어는 아직 짓지도 않은 우리의 죄를 십자가의 피로 씻으시고 흠이 없이 하셔서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들로 삼기로 작정하셨다. 그보다 더 완벽한 창조 준비는 있을 수 없다. 구원까지 예비된 택하심과 부르심의 창조는 사랑이다. 하나님이 나를 창세 전부터 마음에 깊이 생각하시고, 십자가 희생으로 나의 죄까지도 씻어 정결케 하시기로 작정하셨다면 염려할 것이 무엇인가? 창세 전에 죽임 당한 어린 양이 있었음을 깨닫고 바라볼 때 사람의 방황은 끝난다.
바울이 발견한 것은 창세 전에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다. 창세 전에 하나님의 마음에 십자가가 있었다. 하나님의 마음속에 죄로 씻음 받은 우리가 있었다. 그것이 은혜다. 그 위대한 발견은 하나님에 대한 기쁨과 감사가 솟아나게 한다. 창세 전에 세워진 십자가의 사랑은 깊은 쉼과 안도로 나의 숨을 고르게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게 한다. 나의 뿌리가 창세 전의 하나님의 마음에 있다니! 안도는 마음의 입술을 움직여 휘파람을 불게하고 그 휘파람은 찬양으로 울려 퍼진다. 찬양이 없는 기쁨은 완성되지 않은 기쁨이다.
C. S. 루이스는 “기쁨의 완성은 찬양이다”라고 했다. 나는 아내와 연애를 할 때 노래를 많이 불러 주었다. 왜일까?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애하는 남녀는 노래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불러내고, 발생하지도 않은 죄에서까지 씻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에베소서 1:6)고 기록했다. 베드로는 말한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 2:9).
바울은 죽임 당한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 안에서 쉼을 얻었다. 그는 마음껏 찬송할 수 있었다. 그 찬송은 창세 이전에 죽임 당한 어린 양을 통하여 흘러나온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답가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도록 우리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이 사람들의 본분이고 가장 큰 기쁨이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이사야 43:21).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스바냐 3:17).
하나님은 나를, 우리를 기뻐하신다. 어깨춤을 추신다.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신다. 하나님과 우리가 서로를 기뻐하는 것, 서로를 노래하는 것, 그것이 신앙의 목적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 그것이 사람의 최고의 선이며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