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와 예수 자신의 주장
많은 지성인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주 난해한 태도를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사에서 가장 위대한 교사라고 칭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치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부분적이고 피상적인 이해만을 하고 있다. 예컨대 그들은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마 5:39).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와 같은 예수의 말씀을 알고 자주 인용한다. 그러나 예수가 자신에 관하여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예수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주장을 했다. 그의 대표적인 주장 몇 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 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 8:12).
“나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었다”(요 8:58).
“나는 양의 문이다”(요 10:7,9).
“나는 선한 목자다”(요 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다”
(요 11:25~2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 14:6).
“나는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눅 5:24).
이런 주장들은 예수의 존재에 대한 이해가 밝은 지금은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지만,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전혀 다른 긴장이 있었다. 로마가 지배하던 1세기의 이스라엘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시골 나사렛 출신으로 목수의 아들이었다. 그런 그가 이런 주장을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을까? 분명 많은 논란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 서울에 사는 어떤 한 사람이 “나는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 내가 세종대왕 이전에 있었다. 나를 믿으면 죽어도 살고 영생 한다.”라고 주장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루이스의 3자 택일: 사기꾼, 정신병자, 하나님의 아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였던 루이스(C. S Lewis)는 철저한 무신론자로서 그의 지성으로 기독교를 비평하며 수많은 사람에게 반기독교적 영향을 끼쳤다. 그런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기독교로 개종하여 최고의 기독교 변증인이 되었다. 그는 과거 무신론자로서 가졌던 기독교에 대한 여러 의문을 비기독교인 관점에서 이해가 되도록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답변하여 많은 이들을 기독교 신앙으로 이끌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3자 택일]의 논리를 사용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주장을 한다면 그는 세 종류의 인물 중 하나일 것이다.
❶ 사기꾼
사기꾼은 그럴듯한 말로 사람들을 속여 이득을 얻는 사람이다. 예수는 자신이 구세주이며 자신이 3일 만에 부활할 것이며 자신을 믿는 사람들도 자신과 같이 죽음에서 부활하여 영원히 살 것이라고 약속했다. 자신을 믿으면 영원히 살 수 있게 해 준다니! 이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류에게 가장 매혹적인 사기이다. 만약 예수가 사기꾼이라면 그는 역사상 최고의 지능이 높은 사기꾼이며 기독교인은 최고의 사기꾼에게 속은 사람들이며 세상은 전대미문의 사기 사건에 휘말린 것이다. 그의 사기가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예수는 가장 성공한 사기꾼일 것이다. 과연 그럴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예수와 같은 주장을 했던 많은 교주가 있었다. 그들의 열매는 어떤가? 그들을 추종했던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그 종파도 사회에 많은 물의를 일으키며 결국은 사라졌다. 그러나 기독교는 전 세계에서 사회 개혁과 의식 개혁을 일으키며 세상을 더 아름답고 선하게 향상시키는 일을 했다.
기독교는 도덕적인 표준과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가장 높은 표준을 제시한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선 박애 기관이 기독교 단체에 의해 운영되고 있고 기독교가 전파된 곳에 인권, 특별히 여성들의 권리가 현저히 신장하였다. 사기꾼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모습이 오늘날 기독교인의 모습일 수 없다. 기독교인은 사회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다. 죄의 악습에서 해방되어 정직하고 희생적이고 희망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다.
언젠가 한 분이 인상적인 간증을 했다. 늦은 나이에 신앙을 시작한 분의 간증이라 기억에 남는다.
그는 어느 날 거리에서 이전에 어울리던 술친구들을 만났다. 그 친구들은 성경을 끼고 교회를 향하는 그를 조롱하며 말했다. “자네 요즘과 같은 과학 시대에 어떻게 성경을 믿나? 성경에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런 터무니 없는 것을 믿는 것은 아니지?” 그가 답했다. “물이 포도주로 바뀐 것은 잘 모르지만, 우리 집에서는 술병으로 가득했던 우리 집을 이 성경이 가구로 채워지도록 바꾼 것은 확실하다네.”
1928년 9월 28일 영국의 생물학자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발견했다. 페니실린은 인류가 발명한 가장 위대한 발명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만약 페니실린 연구가 없었다면 현대의학은 지금보다 몇 세대는 뒤처져 있을 것이라고 평가받는다. 이 페니실린의 약효를 검증하기 위해 2만 번 이상의 임상 시험을 거쳤다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지난 세월 동안 수천만의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그 선한 영향력을 증명했다. 이런 선한 종교가 사기꾼의 사기에 속아서 만들어진 종교일 수는 없는 것이다.
❷ 정신병자
정신병자는 자신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말하는 사람이다. 허황된 망상에 사로잡혀 자신을 예수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정신병자는 말의 논리성이 없어서 앞뒤가 연결되지 않고 횡설수설한다.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없어서 금방 비정상적인 사람임을 감지할 수 있다. 이전에 서울의 한 국제교회에서 교회를 섬기고 있을 때에 한 백인 미국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미국 출신의 그녀는 외모와 옷차림도 깨끗하게 보였다. 그녀와 얘기를 하는 동안 앞뒤의 말이 맞지 않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 집중을 해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정신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기꾼과 정신병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사기꾼은 자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을 알고 속이는 사람이다. 반면 정신병자는 자신이 대통령이라고 말하면 정말 대통령으로 생각하고 말한다.
이것을 예수께 적용해 보자, 예수께서는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주장을 했다. 세상을 구원할 주님이며 죄를 사하고 영생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강조했다. 복음서에 기록된 그분의 가르침과 대화들은 절대로 정신이상자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 가르침이 너무나 선하고 훌륭해서 많은 사람, 심지어 비기독교인들도 그의 말을 인용한다. 그의 지혜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당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고도의 계산된 질문을 많이 했다.
예수의 답변은 그들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신적인 지혜를 나타내었다. 과연 정신병자의 말에 설복당해 그를 주님으로 섬기며 일생을 그의 제자로 살아갈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늘날 기독교 현상은 기독교가 정신이상자에 의해서 생겨난 종교가 아닌 것을 보여준다.
❸세상을구원할하나님의아들
마지막 가능성은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주장대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것이 지금의 기독교 현상과 기독교인들의 삶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 이르게 되는 가장 합리적인 결론일 것이다. 그분은 자신의 가장 대담한 주장과 약속인 죽은 자의 부활을 자신의 부활로 직접 증명했다. 만약 예수께서 구세주가 아닌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단지 휼륭한 성인이요 탁월한 교사에 그쳤다면 지금과 같은 기독교 현상과 교인들의 전적인 헌신의 모습은 결코 설명할 수 없다. 그는 제자 베드로가 고백한 것처럼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이시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각을 다시 평가해 보자. 많은 이들이 예수는 역사상 실존했던 훌륭한 교사이며 성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이 단지 훌륭한 교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그를 훌륭한 교사라 칭하는 것은 모순이 된다. 어떻게 거짓말을 말하고 허황한 주장을 하는 사람을 훌륭한 선생이라고 칭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많은 이들이 예수에 대하여 피상적인 이해에 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두 가지 선택
위에서 살펴본 결론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생각한다면 모든 사람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첫째 선택은 여전히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비신앙인 가운데서도 성실하고 사랑이 많은 신실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본질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삶은 목적도 방향도 없이 살아가는 방황일 뿐이다. 그저 자신의 행복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살다가 흙으로 사라질 존재인 것이다. 자신의 만족과 행복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사랑을 주고 나누는 것에서 행복을 얻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죽은, 다음에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허무와 목적 없는 방황의 삶, 그리고 최종적으로 심판이 기다리는 삶이 우리의 선택이 될 수는 없다.
두 번째 선택은 하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은 중심이 흔들리지 않으며 살아갈 이유와 목적이 분명하다. 기독교인의 삶은 이 땅에서도, 그리고 다가오는 세상에서도 참된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삶이다.
에딘버러 대학의 제임스 심프슨 경은 진통제를 개발해서 환자들이 고통 없이 수술을 받게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한 기자가 심프슨 경에게 “선생님의 생애에서 가장 소중하고 위대한 발견 한 가지를 들라고 하면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라고 질문했다. 사람들은 아마도 마취제라는 답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심프슨 경은 이렇게 답했다. “나의 생애서 가장 소중한 발견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은 누구나 그와 같은 답변을 할 것이다. “죄인이 십자가의 밑에 무릎 꿇을 때 그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도달한 것이다”(사도행적, 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