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기적(요한복음의 7가지 이적)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다른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이적이다. 예수께서 행하신 많은 이적은 예수께서 모든 물리적이고 자연적인 현상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갖춘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예수의 기적에 대해서 비이성적이며 비과학적이라고 거부한다. 토머스 제퍼슨은 예수의 역사성은 인정하되 그분의 신성과 기적 이야기는 제거한 예수에 대한 논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기적을 빼놓는다면 사복음서의 대부분 기록과 예수의 신적인 특성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행한 많은 기적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기적 7가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신성의 증거들을 살펴본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적 ( 2:1~11) : 물질의 질과 속성을 지배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적은 예수께서 행한 첫 기적이다.

물이 포도주로 바뀐 기적에 대해 조롱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자연계를 가만히 살펴보면 그 기적이 전혀 이상스러운 일이 아니다. 포도주는 포도 열매로 만든다. 그 포도 열매는 포도나무에서 얻는다. 포도나무는 뿌리에서 물을 빨아올려 포도 열매를 만든다. 딱딱한 가지에 포도 열매가 맺히는 이 과정을 아무도 시비하지 않는다. 포도나무를 지으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께서 그 모든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조오지 맥도날드(George Macdonald)자연법칙이 바로 기적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포도나무가 물을 끌어 올려 포도가 자라는 것을자연법칙이라고 하며 그 현상에 대해서 아무런 의문을 가지지 않고 받아들이는데 그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이다. 줄을 따라 늘어선 포도나무가 아무도 지켜보는 이가 없어도 해를 받으며 포도가 자라는 과정은 기적이 맞다. 기적은 매년 일어나는 변환과정을 한순간으로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한순간에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것과 오랜 시간 동안 매년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큰 기적인가? 이것은 한 학생이 일생에 한 번 시험에서 100점 맞기가 더 쉬운가? 아니면 모든 시험에서 평생 계속 100점 맞기가 더 쉬운가? 와 같은 질문이다. 이 기적을 통해 예수께서는 물질의 질을 바꾸고 시간을 초월하는 신적인 권능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것을 드러냈다. 이 기적을 보고 제자들이 그를 믿었다( 2:11).

왕의 신하의 아들 치료( 4:46~54): 공간, 거리 그리고 질병을 지배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행하신 두 번째 기적은 왕의 신하의 아들을 치료한 기적이다. 이 사건은 예수께서 첫 번째 이적을 행한 가나에서 일어났다, 아들의 병 치료를 구하며 왕의 신하는 가버나움에서 가나로 먼 길을 왔다. 예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아들이 살아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그 말씀을 믿고 돌아가는 중에 아들이 살아났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종들은 아들이 치료된 시간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때였음을 말해 주었다. 그 기적을 보고 왕의 신하와 온 집안이 예수를 믿었다( 4:53). 예수는 공간과 거리를 초월하시는 권능이 있는 분이셨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6:5~15):   () 지배

두 번째 기적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다. 이 기적은 혼인 잔치와 같은 이치로 설명할 수 있다. 보리떡은 보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보리를 재배해서 추수하고 탈곡한 다음 빻고 쪄서 보리떡을 만든다. 하나님께서 그 추수의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떡을 만드는 것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농부가 씨앗 하나에서 수십 수백 배의 결실을 하게 하는 분이 하나님이다. 하나의 씨앗에서 수십 배의 열매들을 맺히는 것이 어떻게 과학적이라 할 수 있는가? 그 현상을 의문 없이 받아들이면서 중간 과정을 생략한 하나님의 기적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편견이다. 하나님께서는 수천 년 동안 들판에 곡식과 과일들이 자라게 하셨다. 강과 바다에는 고기들이 떼를 지어 살아간다. 이런 곡식과 식물들로 모든 동물과 사람들을 먹이시는 기적을 매일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떡을 증가시키는 기적을 베푸시는 것은 사소한 일이다.

멕도날드는 이렇게 말했다. “한순간에 양이 늘어나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보다 수천 년 동안을 곡식들이 자라게 해서 수십억의 사람들을 매일 먹이시는 것이 훨씬 큰 기적이요 경이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양을 변화시키는 권능을 가지고 계셨다. 이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6:14)고 말했다.

바다 위를 걸으신 기적( 6:16~21): 중력을 지배

제자들이 갈릴리 벳세다에서 가버나움을 향하는 바다 위에서 폭풍으로 인해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때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다가가시고 파도를 잠잠하게 하셨다. 이 기적도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나 창조주의 권능을 생각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늘날 사람들도 쇳덩이가 수많은 사람과 짐을 싣고 수천리를 비행하는 경험을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물오리들도 물에 빠지지 않고 수면을 미끄러져 간다. 예수님은 중력을 다스릴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 11:1~45): 죽음을 지배

예수께서는 죽은 지 사흘이 지난 베다니의 나사로를 방문하여 무덤에서 살려낸 기적을 행하셨다. 죽음은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가장 절망적인 적이다. 예수께서는 죽은 지 사흘이 돼서 부패하기 시작한 나사로를 살려내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적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흙을 빚어서 사람을 만드시고 호흡을 불어 넣어 사람을 만드셨다( 2:7).

흙을 빚고 호흡을 불어 넣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쉬운가? 아니면 이미 만들어진 인간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는 것이 쉬운가?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은 무에서 사람을 만드는 것보다 한 과정을 덜 필요로 하다. 예수님은 창조주만이 하실 수 있는 죽음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이 기적을 보고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다( 11:46).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하신 기적( 21:1~14): 자연계와 생물들 지배

예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갈릴리 디베랴 해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행하신 기적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소망이 산산이 깨져서 절망하고 있었다. 7명의 제자는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동이 틀 무렵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순종했을 때에 그물 가득 물고기를 잡았으며 큰 물고기가 153마리가 그물 안에 있었다.

이 기적은 자연계와 그 가운데 있는 생물들을 지배하시는 예수님의 권능을 나타낸다. 자연계의 생물들과 무생물들이 하나님의 통제하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가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다. 베드로를 회개시킨 닭의 울음소리 세 번, 잠잠케 된 바다의 폭풍, 골리앗을 쓰러뜨린 물매돌 등이 그것이다. 고기들이 우연히 그물에 걸린 것이 아니고 창조주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그물로 들어간 것이다. 다윗의 물매돌도 다윗의 솜씨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제로 골리앗의 정수리를 맞춘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기적을 통해 자연계와 그 가운데 있는 생물을 지배하는 권능이 있음을 나타냈다.

예수님의 기적은 많은 사람에게 예수께서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했다. 그분이 베푸신 기적은 그분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그분께서 해결하시기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분의 기적은 기적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구원, 곧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며 일생을 그분의 자녀로 살아가게 된다.